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어버린 ‘한우 사골’

아내가 커다란 곰솥에 곰국이나 사골을 끓이면 덜컥 겁이 난다는 유머가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렇게라도 사골이 많이 팔렸으면 하는 게 요즘 축산 쪽의 희망이다.

사골은 오랫동안 비싼 값을 유지했다. 사골은 곧 영양 보충의 대명사였다. 사골이란 소의 네 다리뼈를 말한다. 모두 8개의 사골이 한 마리의 소에서 나온다. 사골은 젤라틴이 많아 국물이 잘 나오고, 진했다. 인기가 높았다. 몸보신하면 사골이었다. 명절에 백화점은 물론 시장에서 사골이 포장되어 팔렸다. 인기 선물 품목이었다. 허한 영양 부족의 시대에 사골은 귀품이었다. 황소 사골, 그중에서도 앞다리 쪽 부위가 특히 귀했다. 체중을 버티는 앞다리에서 더 좋은 국물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정신적인 면도 있었다. 밭 갈고 온갖 무거운 것을 거뜬히 운반하는 묵묵한 황소의 튼튼하고 힘 센 이미지가 일종의 토템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신문을 보면, 사골이 명절을 맞아 품귀현상을 빚는다는 뉴스가 흔했다. 사재기를 하거나 가짜 소동도 있었다. 젖소 뼈를 속여 팔아 구속되는 일당이 고개를 푹 숙이고 신문기사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우의 ‘신토불이’ 이미지가 뼈에 투영되어 건강식품의 신화에 한몫했다. 오랫동안 한우를 다룬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주 예전에는 사골뼈라고 해서 특별히 비싸지도 않았다고 한다. 은퇴한 설렁탕집 주방장도 비슷한 증언을 한다. 고기를 사면 사골은 그냥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고. 그러던 것이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선물 문화, 보신 문화가 성장하던 1960년대부터 사골 값이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0,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값이 더 뛰었다. 시내 설렁탕집 국물이 묽어졌다는 불만이 나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커피용 식물성크림을 넣는 집, 땅콩버터로 맛을 내거나 돼지사골을 섞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골과 설렁탕의 수난사가 이어졌다. 외국산 고기가 흔해지면서 고기는 더 넣어줄망정 진짜 한우 사골을 몇 천원짜리 탕 그릇에 넣는다는 건 어불성설이 되는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외국산 사골이 대량으로 들어오고나서도 한우 사골의 이미지는 굳건했다. 그러나 그런 호시절(?)이 계속되지는 못했다. 보신 시대의 종말이랄까, 영양과잉의 반성이랄까, 덜 먹고 가볍게 먹는 것이 미덕이자 유행이 되면서 사골 인기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누구는 거품이 빠지는 거라고도 했다. 한우 사골이 그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기는 했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은 비록 잡뼈를 섞기는 하지만 한우 사골을 쓰는 탕집이 늘었다. 값이 크게 눅어졌기 때문이다. 축산물 냉동창고에 사골이 주인을 찾지 못해 쟁여져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 기회에 좀 사서 먹어보는 것은 어떨지. 덩달아 값이 떨어진 한우 소꼬리로 찜도 하고 탕도 끓여보시길 바란다. 그러고보니 오래된 서울 시내 설렁탕집을 찾은 지 오래되었다. 이문옥, 잼배옥, 은호식당 같은 곳들 말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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