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모니터와 TV 그리고 스크린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연기돼 표류했던 윤성현 감독의 스릴러 영화 <사냥의 시간>이 23일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 변화의 과정에서 그리고 전 세계 감염병 사태 와중에서 관람 행위의 습성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제공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이 드디어 재-개봉한다. 물론 <사냥의 시간>은 우리 시간으로 2020년 4월23일 오후 네 시에 첫 개봉한다. 하지만 재-개봉이란 표현을 에둘러 쓰는 까닭은 이미 여러 번 개봉 일정이 밀리고,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표류’라는 단어도 심심치 않게 쓰였다. ‘윤성현 감독, <사냥의 시간> 개봉 연기 후 표류 중’ 이런 식으로 말이다.


표류는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상황을 뜻한다. 영화의 정박지는 전통적으로 개봉이다. 개봉할 시점, 장소를 찾지 못한 <사냥의 시간>의 표류 사태는 영화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듯싶다. 단순히 개봉일정을 못 잡는 사태가 아니라 여러 초유의 상황들로 인해 빚어진 유례 없던 상황이니 말이다.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은 2020년 상반기 가장 기대되던 작품 중 하나였다. 2010년 <파수꾼> 이후 윤성현 감독은 차기작을 갈망하게 만든 감독 중 한 명이었고, <파수꾼>을 통해 얼굴을 내밀었던 이제훈, 박정민 같은 배우들은 그사이 한국 영화의 든든한 주역으로 성장했다. 그랬던 이들이 다시 함께 만드는 영화라니, 두근댈 수밖에 없었다.


감염병의 소문 속에서 베를린 영화제에서의 상영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시사회가 예정되었던 2월25일 사태는 커졌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던 선택은 3월 말이 될 때까지도 잠정적 유예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결국 4월10일 ‘넷플릭스’에서의 개봉이 두 번째로 약속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투자배급사와 해외세일즈사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누가 더 옳고, 나쁘고 따지기 전에 <사냥의 시간>을 기다려온 관객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넷플릭스와 왓챠에 볼 만한 영화가 많다고 하더라도, 정작 우리가 기다려온 것은 <사냥의 시간>과 같은 ‘영화’의 개봉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 <사냥의 시간>이 갖는 상징성이 있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나 ‘왓챠’엔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외의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여기엔 영화관에서의 전통적 관람 습관도 포함된다. 가령,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손꼽아 기다리다 개봉하자마자 보았지만 어쩐지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욕망을 더 자극했다. 좋은 영화일수록 더 그랬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결혼이야기>도 그랬다. 연기도 좋고, 이야기도 훌륭해서 영화관에서 보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결혼이야기>가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처럼 압도적인 아이맥스 스크린을 요구하는, 그런 볼거리 스펙터클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두 부부의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관찰하는, 작고 예민한 작품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의 관람을 원한다면 그것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나는 방식이 다만 새로운 콘텐츠의 소비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백명이 함께 영화를 보던 중 나와 영화만이 남는 기분, 그 몰입감을 한 번이라도 맛본 이들이라면 그 경험의 잔상을 쉽게 잊을 수 없다.


코로나19의 유행 이후 영화관의 관객석은 띄엄띄엄 채워진다. 그런데 이게 또 사람들로 북적이던 영화관을 피하려고 새벽이나 늦은 밤에 가서 일부러 고독하게 영화를 보던 체험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1990년대 춘천의 육림극장에서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지정 좌석도 없어 아무 데나 사람이 드문 곳에 가서 앉았던 기억과 다르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를 보러 낮 시간에 혼자 영화관에 갔더니 저 멀리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가 슬쩍슬쩍 한 칸씩 가까이 이동하는 바람에 너무 놀라 영화를 중간에 포기한 경험과도 다르다. 첫 데이트는 이미 사라진 강남역 동아극장이고, 이별은 <화양연화>를 보던 시티극장이다.


생각보다 영화는 장소를 통해 환기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의 두려움 속에서도 재개봉 영화는 꾸준하다. <라라랜드> 같은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도 단지 스크린에서 보는 게 멋져서가 아니라 그 정서가 영화관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변화의 과정에서, 그리고 쉽게 진정되지 않는 전 세계 감염병 사태 가운데서, 관람 행위의 습성은 많이 바뀔 듯싶다. 물론 공간은 바뀌어도 영화는 영원하다. 영화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장소의 이동이 영화를 다른 데로 옮겨 놓을 수는 있을 듯하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실시간 감상평이 유튜브에 쏟아지는 걸 보자면 이 역시도 수백명의 관객과 영화의 공기를 나누던 습성의 변주 아닌가 싶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 느끼는 공기, 영화의 속도감과 리듬 그리고 에너지. <사냥의 시간>처럼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영화를 더더욱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콘텐츠 너머의 알파, 플롯이나 이야기 너머의 정서,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결합이니 말이다.


<강유정 |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