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바다 위를 걷고 싶다




‘빛이 있었다’는 태초에 길은 없었다. 빛과 어둠 사이의 시간과 명멸하는 뭇 생명을 관할하는 조물주도 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은 오로지 인간만의 영역이다. 어디 인간 아닌 존재가 만든 길을 본 적이 있는가, 들은 적이 있는가. 인간만이 길을 만든다. 인간이 걷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길의 변천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길은 인간의 삶과 삶터를 잇고 있게 한다. 작은 집단에서부터 너른 문화권의 교류·왕래·소통을 위해 만드는 길이 거꾸로 삶을 잊게 하는 수도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길 중에 곧고 너른 길들은 대부분 지구환경에 해악을 끼치는 장벽이 된다. 느린 움직임의 모든 존재를 무시하는 고속도로, 강과 연결된 생태 고리를 끊는 강변도로, 바다와 뭍의 유기적 관계성을 차단하는 해안도로, 지리·지형·지물의 특성과 무관하게 직선으로 건설되는 자동차전용도로는 빠름만을 예찬하며 느린 인간을 내친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무시되는 역설의 물증이다. 자동차만 달리는 광안대교에 사람이 대접받는 길을 덧붙인다면 어떤 영화보다도 멋진 길이 되리라. 기계적 빠름과 인간의 느림이 길항하는 다리! 국제영화제를 성공시킨 부산은 그런 길(도로·다리)을 잘 만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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