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살코기보다 간

음식을 먹으러 갈 때 정작 주요리보다 ‘곁들이’가 더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다. 그저 그런 칼국수집이 인기가 있어 가보니 맛있는 김치 덕이라거나 스파게티보다 피클이 좋은 집이 있다. 나로 말하자면, 순대보다 간이다. “아줌마, 간에다가 순대를 곁들여주면 안될까요?”하고 물은 적도 있다.

간은 동물의 영양이 응축된 장기다. 생물시간에 배운 대로, 먹은 음식물의 영양이 간에 쌓인다. 물론 독성도 간에서 해독한다. 그래서 ‘간 때문이야’라고 차두리가 외쳤던 거다. 간은 갓 익히면 부드럽고, 식으면 딱딱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고춧가루 소금에 간을 찍어 그 고소한 맛을 음미하노라면, 내가 육식동물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소 간은 천엽과 함께 술안주로 배웠다. 익혀 먹어야 한다는 경고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생으로 먹는다. 모르겠다, 나도 어지간히 먹어왔던 생간. 천엽은 꼬들꼬들하고 생간은 물컹거린다. 그 조합이 꽤나 어울린다. 닭 간도 많이 먹었다. 집에서 백숙을 하면 간은 아버지와 내 차지였다. 모래집은 물론 간과 작은 콩팥까지 다 받아왔다. 더러 다른 손님이 버린 것을 얻어오기도 했다. 소금 툭 찍어 먹으면, 간 특유의 질감이 혀에 길게 묻는다. 피 냄새 같은, 그래서 더 자극적인 그 맛이 아직도 혀에 있다.


나중에 커서는 종종 가던 닭꼬치집에서 구이를 배웠다. 딱 소금만 쳐서 구운 닭 간은 술안주로 제격이다. 일본식으로 와사비를 발라 먹어도 좋다. 유럽은 닭 간을 즐긴다. 돼지고기와 섞어 ‘파테’를 만든다. 고기 간 것과 섞은 후 천천히 익혀서 차갑게 식혀 먹는다. 파테는 어머니 손맛을 겨루는 대상이다. 가정마다 요리법이 달라 개성이 넘친다.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향수 음식이기도 하다. 프랑스군의 전투식량에도 들어갈 정도다. 이탈리아는 닭 간을 익혀서 곱게 갈아 빵에 발라먹는 걸 즐긴다. 너무도 싸고 평범한 재료이지만, 매력적인 맛을 낸다. 푸아그라(거위나 오리 간)처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요리다. 억지로 먹이를 먹여 부풀린 간도 아니니, 더 ‘윤리적’인 재료다.

총각시절에 잘 가던 시장 쪽에 닭 내장 집이 있었다. 창자와 간, 암탉의 배 속에 있던 미성숙란을 넣고 탕을 끓여냈다. 워낙 싸고 허름한 요리라 노동자들이 바글바글했다. 탕 맛이 좋았고 양이 푸짐해서 인기가 있었다. 요새 닭내장탕 하는 집을 보기 힘들다. 듣기로는 닭 간이나 내장을 유통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쉬 상해서 국민 보건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도 즐기는 닭 간을 유통하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는 말도 있다. 필자에게 고기 유통상인이 전해준 말이다. 사실이라면 믿어지지 않는다. 간은 빨리 상하고, 조심히 다뤄야 한다. 특히 닭 간은 더 빨리 상한다. 그래도 요즘처럼 냉장 기술이 좋고 유통이 잘되는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닭 간이 고양이와 개 먹이 가공용으로 쓰이고 있어서 제 몫은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한다. 내가 닭 간을 먹자고 하면 개먹이를 뺏어먹는 셈이 되는 걸까. 간은 내가 먹고, 차라리 살코기를 건네주마.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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