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직장인의 점심시간

원래 직장생활을 하던 내가 요리사가 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식당들의 불친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점심시간은 북새통이었다. 대부분 직장의 점심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매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맛이 마음에 들면 서비스가 나빴고 서비스가 좋으면 맛이 별로였다.

나는 맛보다 서비스를 더 따졌다. 거창한 서비스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싶다는 거였다. 밥그릇을 던지지 않는 집, 합석할 때 양해를 구하는 집, 반찬 재활용 안 하는 집,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사를 하는 집…. 유명한 콩국수집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장사진을 이뤘다. 그것까지는 관계없는데, 꼭 이런 식이었다. “이리 오세요, 여기 다 드셨네요.” 아직 한창 식사 중인 테이블에 새로운 손님을 끌어대면서 주인이 하는 말이었다. 아직 국수가 꽤 남아 있고, 입에 든 음식물도 삼키지 못한 상태라는 걸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이즈음, 한 방송기자가 쓴 책 제목이 <강요된 통만두>였다. 물만두인가를 시켰는데 통만두를 내준 주인이 항의하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거였다.

“거, 물만두나 통만두나 그게 그거 아니오?” 다 같은 만두이니 그냥 먹으라는 얘기였다는 거다. 점심시간은 빤하고, 딱 정해진 손님을 나눠 받아 먹고살아야 하는 오피스거리의 식당이 그럴 수도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식사속도가 늦은 여자들은 그런 환경에서 먹다 체하곤 했다. 괄괄한 내 여자 동료가 이랬다던가.

“아저씨, 내가 애 낳아봐서 아는데 아무리 채근해도 열 달 되어야 나온다고요.”


일본출장을 다녀왔다. 산업이란 건 어디나 비슷해서 도쿄 한복판에도 회사와 회사원이 끓는다. 동시에 점심을 시작하고 마친다. 그러니 식당이 난리다. 우리처럼 따스하고 인간적인(?) 점심은 흔한 풍경이 아니라고 한다. 각자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거나, 식당에서 먹더라도 각기 혼자 앉아 먹는다. 혼자서는 점심시간에 밥 한 그릇 얻어먹기 어려운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자세히 보니, 오피스거리의 식당은 구조도 특이하다. 서서 먹는 집이 많다. 심지어 스테이크하우스인데 서서 먹는다. 좀 끔찍한 풍경인데, 혼자서 먹는 사람들이 쭉 식탁에 앉아 있고, 그 뒤로 한 사람씩 ‘다음 타자’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식사 중인 손님 정수리 뒤에 바짝 붙여서 다음 손님이 가슴을 대고 있는 꼴이었다.

공간이 좁아서 생긴 일이겠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경제대국 일본의 직장인들이 300엔짜리 국물도 없는 밥을 씹고 있었다. 멋진 수트에 양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말이다. 먹는 일이라는 게 우아한 것이 아니라 고단한 인생의 여정이겠으나, 저 지경이라면 살맛 안 나는 것 아니겠는가. 한 끼 밥, 그것에 깊은 의미를 담는 것도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싶어 우울해졌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오래된 의문도 이즈음엔 후자로 기울고 만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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