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손가락과 달 사이, 패배의 크레바스

언론 영화가 있다. 특정 하위 장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제법 많은 예시를 들 수 있다.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스포트라이트>이다. 아카데미가 주목한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이 은닉해왔던 아동성추행을 끈질긴 추적으로 보도해낸 ‘보스턴글로브지’의 실화를 담고 있다. 워터게이트와 관련된 영화들이나 얼마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 상을 수상했던 최승호 PD의 <자백>도 언론 영화에 속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언론 영화들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언론인들의 승리를 다룬다. <제보자>의 방송국 보도 기자는 황우석을 진실의 심판대에 세웠고,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은 말 그대로 성역의 진실을 캐낸다. 언론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승리의 훈장이자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승리는 <모비딕>이나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와 같은 가상의 언론사를 다룬 작품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진실을 찾아내는 것, 그게 언론 영화의 장르적 클리셰였던 것이다.


영화 <트루스>의 한 장면. / 경향신문 DB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에 개봉한 영화 <트루스>는 사뭇 다르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 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언론 영화의 기승전결이 모두 발생한다. 이런 식이다. 의심스러운 사태가 발견된다. 언론이 나선다. 베테랑 수사관과 전문가가 모인 드림팀이 속전속결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한다. 드디어 대중에게 공개되고,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세상이 들썩인다. 언론인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런데 이렇듯 조금은 뻔한, 언론 영화의 관습적 서사가 30분쯤에서 끝나버린다. 그렇다면 러닝타임 123분 중 나머지 100분가량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로 채워지는 것일까? 의외로 <트루스>는 언론의 승리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그 패배를 다루고 있다. 언론이 당당히 세상과 맞서는 내용이 아니라 세파에 밀려 작아지고 마는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 <트루스>는 ‘래더 게이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CBS의 간판 보도 프로그램 <60분>을 연출하는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태만에 대한 방송을 기획한다. 군복무 태만이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부시가 당시 주방위군에 입대했던 시절은 베트남 전쟁기이다. 이는 곧 베트남 파병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주방위군에 입대하고는 그나마도 제대로 훈련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가능케 한다. 때마침 방송시점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 중이었다. 그리고 이는 한편 부시 정부의 중동 파병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군을 전쟁터에 보내려는 대통령의 베트남전 기피와 군복무 태만은 말하자면 엄청나게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잘 맞춰지던 퍼즐은 ‘폰트’와 ‘서체’라는 의외의 복명을 만나 그 신빙성에 타격을 입고 만다. 한 블로거가 언론사에서 증거로 제시한 서류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프로그램으로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부터 ‘글자 폭’, ‘어깨글자’, ‘행 바꿈 위치’ 등이 중요한 사안으로 올라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함께 사실을 밝혀가자던 회사는 누군가 잘못한 사람 즉 사태를 책임질 사람을 잡도리하고, 개인의 실수일 뿐 회사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손을 뗀다. 결국, 그들이 무엇을 밝히려고 하는지는 묻히고 선정적이며 쇄말적인 진위 논쟁이 가열된다. 가리키는 달은 사라지고 손가락만이 남는다. 진실은 손가락과 달 사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만 셈이다.


취재팀에도 잘못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어 있다시피, 사안이 무르익어 방송을 하는 게 아니라 방송 시간이 5일 후에만 허락되니 무조건 그 안에 방송 내용을 꿰맞춘다. 시사보도프로그램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고, 따라서 시청률이 떨어지고 광고가 부족하니, 원하는 시간에 방송될 수 없다. 베테랑 시사 앵커 댄 래더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이브닝뉴스가 돈을 벌어야 했고, 모닝쇼는 더 벌어야 했으며 이젠 리얼리티 출연자가 출연하는 게 시청률이 제일 높다”고 말이다. 


뉴스는 원래 공익과 진실을 보도하는 거였는데, 이젠 뉴스도 돈이 되어야 한다. 최근엔 뉴스에 대한 뉴스(reporting on reporting)가 일반적이다. 아무도 목숨을 걸고 취재하려 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조사하려 하지 않는다. 


예상과 달리, <트루스>는 언론이 진실을 길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너지는 이야기이며 승리하는 게 아니라 패배하고 마는 이야기이다. 메리 메이프스는 해고되고 댄 래더는 사과 방송을 남기고 앵커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 어쩐지 <트루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비단 미국의 그곳에서만 일어나는 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어진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진실을 밝히는 것 그것은 언론의 의무와 권리이며 한편 우리처럼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매우 큰 위안이기도 하다. 내부 감사를 받던 메이프스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엔 관심도 없느냐며 항변한다. 불행히도 비슷한 일들은 자꾸 반복된다. 오죽하면, 연예계에서 비롯되는 연애나 고소 기사들을 보며 일반 대중이 스스로 음모론을 기획할까?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덮으려 하는 것일까? 달을 가리켜야 하는데, 세상은 자꾸 손가락과 달 사이에서 실종된다. 그 구멍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거짓이 있다.



|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