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두 개의 밀실, 두 번의 밤

‘밀실(密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도록 한 비밀스러운 방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 두 번의 밀실, 두 개의 밤이 등장한다. 하나는 <밀정>의 밀실이다. 상해의 임시정부에 머무는, 도망자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이 밀실에서 조선총독부 경부 이정출(송강호)을 만난다.

 

밀실을 가득 채운 된장찌개 냄새는 일본어를 쓰고, 일본 제국 경찰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조선인 이정출의 생래적 미각을 자극한다. 말보다 훨씬 더 강렬한 감각적 설득을 시도 중인 것이다. 비밀의 방은 비밀의 밤으로 이어져 정채산은 이정출과 함께 밤낚시를 가고, 밀실을 벗어난 밤은 확장된 비밀의 공간이 되어 준다. 당신과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밀실을 벗어나도 그곳은 비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비밀은 공간이 유지해주는 게 아니라 믿음이 유지해 주는 것이니까.

 

영화 <밀정>(위)과 <아수라>의 한 장면.

 

또 하나의 밀실은 영화 <아수라>에 등장한다. 장례식장에 모인 아(我)와 피아(彼我)가 있다. 장례식장은 원래 열린 곳이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협상을 위해 열린 곳을 닫아 밀실로 만든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비밀을 만들고자 한다. 어쩌면 그 비밀은 우리가 거래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고 협잡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며 불법의 비리가 될 수도 있다. 여하튼 그들은 열린 공간을 닫아 밀실을 만들어 뭔가 일을 꾸민다.

 

그런데 만약, 이 밀실이 애초에 불법적인 것, 그러니까 세상의 도리에 벗어나고 정의로운 것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면 어떨까? 그러니까 어떤 밀실은 의를 논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밀실은 불의를 위해 급조된다. 영화 <아수라>에서는 그 밀실에서 제목 그대로 아수라가 펼쳐진다. 피와 살이 튀고, 칼과 총이 난무하며, 정치가의 편에서는 거대한 밑그림이 되고 검찰 편에서는 중요한 첩보지가 되는 그 공간에서 법이나 믿음, 정의는 모두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는 밀실이기에 명분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되고 만다. 살아남는 사람이 마음대로 밀실의 비밀을 조작하는 것이다.

 

2016년 9월28일부터 김영란법이 효력을 발휘했다. 김영란법은 나름 열린 세상에서 밀실을 차려두고 서로 뜻과 뜻이 맞는 척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밥을 먹고, 친교를 나누는 척 그러니까 믿음과 마음을 나누는 척했지만 사실 권리를 주고받고, 돈을 주고받아 이익을 나누던 사람들을 솎아 내는 작업의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 <아수라>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점에서 우리 영화의 관객들이 보는 세상은 이미 법 너머에 있는 듯싶다. 즉, 법을 만들 때엔 법이 힘을 갖고 정말 나쁜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어쩐지 진짜 나쁜 사람들은 이미 법을 우습게 알고 법 위에서 법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아수라>에서 부패할 뿐만 아니라 잔인무도한 안남시장(황정민)은 법을 무효화하고 자신의 말을 법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벽을 치고 자신만의 밀실을 만든다. 그 밀실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세상의 법을 우습게 아는 불법이 아니라 무법의 시간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말려도 보지만 이미 법을 넘어서 본 악인은 그런 경고를 무시한다. 밀실을 만들 수 있다면 그까짓 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더 오만방자하게 힘을 휘두른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재벌이 만든 밀실의 폭력을 그리고 <도가니>는 장애인 학교 교장실과 교무실이라는 밀실의 폭력, <내부자들>은 권력을 나눠 가진 자들이 누추한 욕망을 ‘깨벗고’ 드러내던 요정의 밀실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밀실을 가진 사람들은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정의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왕궁을 차리고 나름의 법을 행사하며 그 힘을 폭력으로 행사한다.

 

김영란법이 정말 노려야 할 대상은 바로 이렇듯 밀실을 차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이 또 다른 밀실을 만들어 법을 우습게 알고, 법이 있으나 손댈 수 없는 밀실로 도망하게 놔둬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때론 큰 대의가 밀실에서 시작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수없이, 밀실에서 피어난 검은 욕망과 왜곡된 힘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검사와 변호사가 주고받은 고급 승용차와 명품 가방이 사랑이라는 밀실로 숨어들 수 없는 세상, 밀실을 차리기만 하면 그 밖에서 누구도 진입하지 못하던 그런 세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법을 만들면 법을 넘어서 비웃는 사람들까지 제대로 법을 존중하게 만들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바로 벽 없는 투명사회일 테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