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스모그, 주꾸미로 헹구자

기록적인 스모그다. 중국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들이 모르쇠하고 있는 상황이 기분 나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업보 아닌가 하는 자각도 든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동해안 공업지대에서 대부분의 스모그를 발생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공장이 생기니 농사로 이문을 못 맞추는 농업지역 사람들이 몰린다. 그들도 소비하고 겨울에 난방을 해야 한다. 그들이 만드는 산업과 생활의 배설물들이 결국 스모그인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한다. 중국산 저가 상품이 주로 그 대상이다. 국산이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간 수많은 재료와 부품이 중국산이다. 밑창이 멀쩡한 신발을 바꾸라고 광고는 충동한다. 2014년 봄의 새로운 모드로 갈아 신으라고 유혹한다. 장롱에 쌓인, 한두 번 입고 던져둔 옷은 왜 이리도 많은 것인가. 그것이 모두 우리가 마시는 스모그를 만든다. 중국이 아니라 스모그의 원죄는 우리의 욕망이다. 당신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가.



인간들이 스모그를 만들어내는 동안에도 자연은 스스로 호흡한다. 시장에 가니 벌써 주꾸미가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미디어는 두 달쯤 앞당겨 제철을 만든다. 막상 제철이 되면, 다음 제철의 재료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뭐든 꾹 참고 있어야 제철이 된다. 세상의 자연물이란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철의 주꾸미가 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실상 제철이란 인간의 시각으로 결정된다. 주꾸미가 잘 잡히는 것은 산란하기 위해 먼 바다를 떠나 연안으로 붙어오기 때문이다. 잘 잡히니 제철이다.



요즘 주꾸미는 알이 차지 않았을 뿐, 살은 이에 콕콕 박히듯 씹힌다. 맛이 있다. 밥알 같은 알이 다 차면 오히려 주꾸미 맛은 덜하다. 알이 차는 둥 마는 둥 할 때 주꾸미 식감이 절정이다. 알이란 결국 어미의 살과 자양을 빼앗아 생기는 게 이치. 알이 잘 들면 살 맛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여러분은 주꾸미를 어떻게 요리하시는지. 나는 우선 회로 먼저 먹는다. 낙지와 달리 독특한 향이 있고, 미끈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횟감으로 높이 치지는 않는다. 그래도 주꾸미 다리를 회로 씹는 맛은 특별하다. 회로 몇 점 먹고 나면 볶거나 구워 먹는 게 좋다. 기름과 간장, 고춧가루를 조금 바르고 석쇠구이를 하면 최고다. 다리는 익는 듯할 때 잘라서 먼저 먹고, 머리는 즙과 먹물이 나오도록 충분히 굽는 게 요령이다.


‘토렴’도 좋다. 샤브샤브라고 일본식으로 부르는 요리 말이다. 게다가 봄은 조개 맛이 제일 좋을 때다. 진달래, 개나리 필 때 조개가 맛이 든다고 하지 않던가. 조개 국물로 육수 만들어 주꾸미를 살살 흔들어 익혀 먹는 맛이란! 흔히 토렴과 샤브샤브를 표현하는 한자를 ‘쇄’라고 하는데, 이것은 ‘빨래를 흔들어 헹구는’ 의미라고 한다. 맑은 봄날, 맑은 개울에서 하얀 속옷을 헹구는 느낌이랄까. 꽃 피고 스모그도, 황사도 없는 날을 받아 춘삼월에 서해안으로 가련다. 아니면, 시장에서 산 주꾸미와 봄 조개도 좋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봄은 기어이 온다. 그것이 우리가 참고 세상을 살아내는 한 가지 믿음이기도 하다. 사족인데, 주꾸미는 언제 ‘쭈꾸미’로 불릴 수 있을까. 짜장면도 복권되었는데….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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