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졸업식의 짜장면

아침에 일어나니 신문에 전단이 많이 곁들여 왔다. 늘 보던 식당 개업 소식, 학원 소개뿐 아니라 좀 특별한 내용도 있었다. ‘졸업장을 제시하시면 할인해 드립니다.’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왔다. 제법 감각 있는 식당 업주라고나 할까. 마침 내 아이도 졸업을 한다. 어디로 갈까 물으니, 스시 뷔페란다. 스시도 뷔페가 있어?


아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시종 화기애애하고 따사로웠다.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우는 녀석은 하나도 없네.” 그럴 것이다. 가난과 설움 따위는 없으니, 눈물도 없어진 것일까. 헤어져도 언제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락하고, 지구 끝까지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나는 별로 의아해하지 않았다. 저 친구들은 우리 세대와 다른 것이다. 고통이라면 수학 문제가 안 풀리는 게 더 많다는 것이고, 배고파서 괴로웠던 추억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환하게 웃고, 더 밝을 수 있는 저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아이에게, 그래도 졸업식이니 중국음식을 먹는 게 어떠냐, 하려다 말았다. 아이는 중국식을 좋아한다. 그래도 특별한 날에는 스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는 결국 나의 바람과 달리 제 어미와 함께 이름도 생소한 그 집으로 신나서 달려갔다.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날씨는 추웠다. 나는 변변한 겉옷도 없었다. 살갗이 따가운 ‘나이롱 쉐타’에 ‘비니루 잠바’나 입고 길고 긴 훈시로 이어지는 졸업식을 치렀다. 후배들은 찬바람에 얼어터진 볼로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흙바닥에 교실 의자를 내어놓고 치르는 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아이들보다 둘러선 엄마들이 더 울었다. 아마도, 그네들의 저 오래전 기억들의 데자뷔였을 것이다.


쟁반위에 올려진 짜장면(출처 :경향DB)


그리고 나는 짜장면 한 그릇 못 먹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은 아들의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뭐, 내가 알려드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배는 고팠고, 돌아가는 하학길은 멀었다. 길을 걷다가 딴생각에 부상으로 받은 ‘민중서림 영어 콘사이쓰 사전’도 개울가 진흙탕에 떨어뜨렸다. 나는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기어이 아이와 중국집에 갔어야 했다. 두툼한 장판이나 비닐을 깐 탁자에 젓가락통에 나란히 끼워져 있던 소독저들. 그날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탕수육도 하나 시키리라. 당근과 목이버섯이 들어 있는 달콤한 소스는 반은 붓고, 반은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을 것이다. 파삭파삭한 탕수육이, 김을 무럭무럭 뿜으며 내 탁자에 당도하는 순간을 기다리리라. 간장과 고춧가루, 식초를 섞은 소스에 고깃점을 찍고 입가에 묻혀가며 먹으리라.


졸업식은 일찍 끝났다. 아이들은 화사하게 웃으며 담임선생님과 포옹했다. 호랑이 선생님도 없고, 모두들 자상한 듯했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짜장면도 눈물도 없는 어떤 졸업식이었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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