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을’의 도시락 냄새

새벽 시장을 보러 첫 전철이나 버스를 탈 일이 잦다. 새벽 이른 차는 으레 자리가 텅텅 빌 듯하지만, 뜻밖에도 만원이다. 자칫하면 앉을 자리도 없다. 장거리 통근하는 보통 월급쟁이들도 있겠지만 들고 있는 가방을 보면 도심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다. 나이도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객차당 평균 연령 60은 넘는 듯하다. 이즈음의 객차에서는 음식 냄새가 난다. 흔한 5000원짜리 백반 사 먹을 형편이 안되어 대개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때문이다. 빌딩 청소 노동자. 그들의 보편적인 이름이다. 빌딩 안에 작은 탈의실이라도 있으면 밥이라도 지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꼼짝없이 차가운 도시락을 들어야 한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은 그분들이 쓸 다용도실이 있어서 늘 음식 끓이는 냄새가 났다.

 

요즘 첨단 빌딩은 이런 기회도 거의 없다고들 한다. 화재 예방을 위해 전열기 사용이 제한되는 까닭이다. 빌딩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주인이 아니라 파견노동자라 늘 눈치를 보게 된다. ‘을’인 파견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란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 중앙대 사태에서 알게 된 엘리베이터 촉수 금지-청소노동자들의 감염까지 걱정해주시니 참으로 고맙기는 하다- 같은 비인간적인 요구사항도 존재한다. 나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백화점에 일하러 가다가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반말지거리에 신분증 요구 같은 고압적 태도에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받았던 것이다. 매일처럼 그 수치를 견디고 출근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을’이란 이렇듯 여러 가지로 몰리고 쏠리는 삶에 놓인다.

 

연전에 홍익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대우 개선과 관련해서 파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놀란 건 대학 측의 처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늘 노동자 편으로 생각하던, 그러니까 ‘어머니, 이모’라고 부르며 친교하던 일부 학생들의 태도였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나가달라고 말이다. 그때의 절망을 지금도 많은 이들이 회자한다. 그리고 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나쁜 예감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이 '중앙대학교 국가인권위 진정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DB)

 

우리는 뭔가 매일 어지르고 누군가 대신 치운다. 거리도, 빌딩도, 학교도 그렇다. 청소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의 안락은 담보되지 않는다. 흔히 경찰과 소방공무원을 공기에 비유한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우리 배후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분들을 뜻한다. 청소노동자들이 딱 그렇다. 이탈리아 나폴리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지만, 한동안 기피 제1호였다. 치안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청소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무너져 더러워서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중앙대 청소노동자 사건이 가장 최악의 상태로 가고 있다. 바로 ‘어머니, 이모’라고 부르며 응원해야 할 학생회에서 뜻밖의 성명을 낸 것이다. 나는 그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는 가장 낮은 데로 임하는 일이다. 그들이 더 낮은 데로 가지 않게 도와주어야 한다. 새벽 전철 안에서 풍기는 도시락 냄새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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