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일본서 찾은 한국음식의 미래

후쿠오카에 몇 번 취재갈 일이 있었다. 이른바 유명한 ‘맛집’에서 한국어를 듣는 일이 어렵지 않다. 최고라는 라멘집에 줄을 서 있으면 한국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포장마차(야타이)로 유명한 나카쓰 천변을 걸으면 한국어로 호객하는 일본인도 있다. “아저씨 라멘, 맛있어요!” 일본 식도락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행기도 비싸지 않고, 부산에선 배편으로도 규슈지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이국적인 풍물에 ‘원조’ 일본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인기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갈 때마다 그 음식들의 역사성에 눈길이 간다. 유럽이 전해준 돈가스의 변신, 단팥빵과 카스테라의 일본화 과정, 짬뽕과 라멘, 교자에 얽힌 동양 삼국의 내밀한 교류사는 가히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음식이었던 돈가스가 고기를 먹지 않던 일본인의 국민음식이 된 배경은 하나의 거대한 정치 문화사의 압축판이다. 단팥빵도 비슷하다. 서구 열강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권력의 열망에 의해 빵이 권장되고, 단팥빵이라는 일본식으로 만들어 소화한다. 화혼양재나 동도서기 같은 실용의 정서가 오늘의 일본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본 근대 음식의 역사는 곧 한국 음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한국식 음식문화라고 여겼던 수많은 일상음식의 원형을 일본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심지어 한국에선 사라지다시피한 에펠탑 닮은 수동식 빙수기계와 아침에 커피숍에서 파는 달걀반숙과 모닝커피가 그대로 살아 있어 놀라웠다. 그래서 거리에서 보는 이런저런 음식이 곧 한국에 등장할 것이라는 예견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 음식에서 우리 음식의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완코 소바의 원조인 하츠고마 식당 (출처: 경향DB)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일본 거리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곱창집이나 불고기집을 보는 건 너무도 흔한 일이며, 김치찌개집과 파전집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정치적 대립관계와는 달리, 음식문화적으로는 밀월관계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 음식문화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를 펴낸 박상현씨도 그중의 한 명이다.

 

블로거로 출발, 부산 음식을 가장 잘 아는 향토음식문화 연구자로 자리매김한 박씨는 고향인 부산과 규슈를 오가는 야간 배편에서 그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육십여회나 일본을 왕복하면서 일본 최고의 당대 음식을 맛봤다. 그 미각의 이면에 숨은 상징들을 짚는 필자의 설명은 놀라우리만치 예리하고 정확하다. 특히 한국화된 일본음식인 초밥과 어묵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게 되고, 지자체에서 음식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노력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통찰력까지 보여준다. 그의 이런 시선이 진실로 남달라 보이는 것은 일본 음식을 통해서 우리 음식의 진면목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인 잘 지은 밥을 음식의 정점에 놓는 시각, 공장제품에 밀린 동네두부의 미덕을 깨우치는 필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일본 음식을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됐다. 물론 우리 음식의 미래 모습을 점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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