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노동하는 밥, 시장의 밥

언젠가 허름한 목로에서 빈둥거리며 낮술을 한 잔 하고 있었다. 불콰하도록 술을 마시면서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데, 목에 수건을 두른 노동자가 두엇 들어와서 국수를 시켰다. 그들이 후루룩 소리도 요란하게, 왕성한 식욕으로 국숫발을 삼키는 광경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서 술잔을 놓았다. 대낮의 술추렴 탁자는 그걸로 끝났다. 창피해서 얼른 셈을 치르고 목로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아마도 인생 최대의 지독한 숙취였다고 기억한다.

 

노동하는 이들의 식탁은 진실되다. 그것이 곧 생산으로 이어지는 신성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겨울 새벽에 장을 보면, 내가 먹는 밥도 아닌데 목이 멜 때가 있다. 막 짐을 부려놓고 추운 길가에서 식은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이는 까닭이다. 시장이란 본디 툭 터진 노상이라 바람 가릴 막조차 없게 마련이다. 어디서 배달 밥을 한 상 받아서 먹는 그들의 밥상이 초라해보이지는 않지만, 먹먹해지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배달이라도 받아 뜨뜻한 밥을 드는 축은 낫다고 할까. 시장 노점에서 초라한 도시락밥을 꺼내 국물도 없이 삼키는 할머니들을 보면, 아 이놈의 세상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수레를 본 적이 있다.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실은 이동형 밥 수레가 인파를 뚫고 노점에 나앉은 아낙들 사이에서 밥을 퍼주고 있었다. 내게는 그때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이방인의 카메라를 물끄러미 보며, 머릿수건을 쓴 채 밥을 밀어 넣고 있는 피곤한 표정이 드러난다. 이런 장면에서 여행자의 우수를 느낀다는 건 일종의 모독이다. 누가 그러거나 말거나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자갈치의 억센 반 뼘짜리 노점에서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노동의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의 아침식사 (경향DB)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을 꼽으라면 요리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대개 영세한 형편이라 급여나 복지 모두 바닥 수준이다. 식당 일을 하면, 대개는 두 끼의 식사를 스스로 마련해서 먹어야 한다. 어제오늘 내가 방문했던 한 식당의 요리사들이 하루 두 끼 먹은 음식은 이랬다.


“아침은 라면과 중국산 김치. 점심은 시장에서 산 싸구려 오징어젓갈(페루산)과 들척지근한 고추절임, 달걀 프라이, 싸구려 소시지볶음, 이것저것 남은 재료를 쓸어 넣은 된장찌개….”

 

왕성한 식욕의 청춘들이 득실거리는 부엌이라 저것조차도 꿀맛이었겠지만, 밥이라도 한 끼 편하고 따뜻하게 먹기 어려운 우리의 노동현실이 보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이제는 누구나 양껏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느냐고 한다. 그러나 노동 현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가장 근본적인 밥 한술에서 이미 차별의 식탁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한 끼니의 밥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현실에 대한 걱정을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5000원이던 밥값이 1만원과 3300원으로 분리되는 세상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밥은 물리적으로 열량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곧 계급이기도 하다. 당신의 점심상에는 어떤 음식이 올라오는지, 그리고 그 밥 한술이나마 편히 뜨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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