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겨울엔 역시 ‘굴’

강풍이 빗자루처럼 얼굴을 후려쳤다. 코털까지 얼어서 서걱거렸다. 멀리 거뭇거뭇한 것이 굴밭이란다. 서해 최대의 굴 생산단지인 보령시 천북면 앞바다. 새벽에 물때 맞춰 현장에 나갔다. 인솔자 박상원씨(천북수산대표)가 붉은 장화를 신고 앞장섰다. 특이하게 천북의 굴은 바다 한가운데 넓게 펼쳐져 있다. 문자 그대로 굴밭이다.

 

“옛날에 송지식이라고, 소나무 기둥을 박아서 굴을 양식했지, 그넘들이 새끼 치고 어울려서 아주 밭이 된 거야. 굉장허쥬?”

 

아닌 게 아니라 장관이다. 보통 서해안 굴은 투석식으로 알고 있는데, 수확량이 적고 까다로워 많이 줄었다. 송지식의 특징은 소나무 기둥이 썩어 없어지면 물이 얕은 갯벌에 알아서 넓게 자란다. 먹이도, 관리도 필요없다. 문자 그대로 자연산이라고 해도 된다.


 

(경향DB)

 

 

“철 되면 그냥 와서 따는 게 전부여.” 그렇다고 마냥 만만한 일은 아니다. 갯벌까지 가서 굴을 고르고 담아 오는 일이 만만치 않다. 주로 동네의 아낙들이 동원되어 임시 노동자로 일한다. 거대한 가마니로 굴을 채취해서 배에 실어낸다. 삭풍 속에 갯벌에 발이 푹푹 빠지니 일이 고되다. 필자는 몇 번이고 펄에 박힌 발이 빠져나오지 않아 공포감까지 느꼈다.

 

이 지역의 굴은 때깔이 노랗고 향이 좋다. 썰물에는 바닷물 밖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알이 잘고 색깔이 진하다. 2, 3년까지 자란 것들인데도 남해안 굴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다.

 

“굴은 다 존겨. 남해안 굴은 수하식이라고, 줄에 매달아서 키우는디, 1년 안에 따서 시장에 내놓는겨.”

 

천북은 수도권에 가깝고 수산물 생산이 활발해서 관광객이 몰린다. 겨울은 단연 굴 잔치다. 집집마다 화로를 걸고 굴을 굽는다. 탁탁, 굴 껍질이 튀면서 굴이 익어간다. 탱탱하고 짭조름하다. 보통 굴은 2월 정도까지 먹는 것으로 알지만, 삼사월 굴도 아주 좋다. 진짜로 굴을 아는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는 말도 있다. 그때가 가장 알이 굵고 알차다. 5월이 되면 슬슬 산란철에 들어가므로 굴 생산량도 크게 준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 굴이 얼마나 좋고 값이 싼지 알게 된다. 이웃 일본만 해도 우리 굴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싸다. 고급화된 경향은 있지만, 대중적인 굴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품질이다. 우리 남해안 굴이 많이 수출되는 것도 품질과 가격이 모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혹시 유럽 여행을 할 때 9개들이 한 접시에 20~30유로(약 3만~4만5000원)나 주고 굴을 사먹어보면 우리 굴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된다.


“굴 많이 드슈. 여자들 얼굴 뽀애지구, 남자들은 힘이 난다니께.”

 

박 대표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걸음걸이가 힘차고 안색이 좋다. 다 굴 때문이란다. 올해 굴이 진짜 성수기에 들어선다. 굴회에 초장을 찍는다. 껍질이 붙은 굴은 감칠맛이 혀에 감돈다. 신나는 겨울이다.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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