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문학 속의 음식

나는 이상하게도 본론보다 ‘지엽말단’에 몰두한다. 뇌가 이상한지 주제보다 변두리 사설이 더 당긴다. 잘 차린 메인 요리보다 주는 둥 마는 둥 하는 짠지 한쪽에 눈길이 가고, 드라마 주인공보다 소박한 단역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석규와 백윤식이 나온 <서울의 달>에 등장했던 절봉이는 지금 뭐하시는지?

 

소설을 봐도 그렇다. 줄거리나 주제보다는 거기 등장한 사소한 사건들이나 인물, 음식 따위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얼마 전에는 순전히 막걸리와 돼지갈비의 사회적 연혁이 궁금해서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소설 <장한몽>을 다시 끄집어냈다. 줄거리는 잊어도 주인공이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돼지갈비를 뜯는 장면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1960년대가 배경인 이 소설에 과연, 그 장면이 있었다. 서울 변두리를 다룬 이 소설은 살아 있는 당대 민중사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관방에서 아침상을 받고, 한 말들이로 막걸리 배달을 시키고 허름한 주점에서 돼지갈비를 뜯는 것이었다. 돼지갈비가 별도로 전문 고깃집에서 팔리기보다는 그 시절엔 그저 안줏거리의 하나였던 것이다. 삼겹살 먹는 장면은 안 나오는데, 그때는 고기라면 돼지갈비였고 삼겹살 유행은 훨씬 후에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DB)

 

감자탕이라는 민중 음식도 그렇다. 이 음식은 어렸을 때 현재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실비집에서 주모가 그럭저럭 끓여내는, 문자 그대로 감자가 그득 든 뚝배기 음식이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감자는 구경하기 어려워지고 커다란 냄비를 상째 올려 여럿이 나눠 먹는 음식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감자보다 돼지뼈가 더 흔해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감자탕이 아니라 감자국이었다는 내 기억을 증명(?)하기 위해 어렴풋한 독서력을 더듬었다. 1970년대 엄청난 베스트셀러 바람을 일으킨 <어둠의 자식들>에 그 대목이 있었던 것 같았다. 헌책방을 뒤져 책을 봤더니 역시나, 주인공 이동철이 금은방에서 한탕 털고 친구와 밥집에서 한 그릇씩 나누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역시 ‘감자국’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문학에서 다루는 음식이 인문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래섭이 쓴 <백석의 맛>은 단행본으로 나와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백석의 시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냉면 국숫발처럼 질기게 이어지는 민족의 음식을 확인하게 된다. 또 만나기 힘든 이북 음식을 떠올리며, 통일이 오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문학은 음식을 통해서 진지하고도 극명하게 인간을 표현한다. 한 예로 김훈 선생의 <남한산성>은 음식이 갖는 여러 상징에 대해 냉정하게 묘파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식량이 말라가고 농성하는 임금께 바치는 밴댕이 젓갈에 대한 냉정한 묘사는, 그 한 줄로 이 소설의 의의를 다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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