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예약

살기 퍽퍽한 시절이지만 그래도 연말에 모임들은 한다. 호텔을 비롯한 고급식당들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십이월에서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연말에 자리조차 잡지 못해 음식 맛이고 뭐고 그저 예약만 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요새는 외식업소도 크게 늘고, 경기는 푸르죽죽하니 예약장부가 별로 지저분해지지 않는 듯하다.

 

요새 예약문화가 자리잡았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느끼는 기분은 별로다. 식당의 ‘주적’인 ‘노 쇼(no show)’ 때문이다. 예약 취소는 상관없다.

 

문제는 아무 연락 없이 아예 오지 않는 거다. 지나가는 손님을 바라보고 있는 집들은 덜한데, 외지거나 비싸서 예약 중심으로 움직이는 식당이라면 충격이 크다. 노 쇼를 넘어 이쪽 은어로 잠수도 있다. 시간에 데어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확인전화를 하게 되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아예 전화를 꺼놓기도 한다. 상황이 이해는 된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임박한 시간에 취소하자니 미안해서 그런 경우다. 이렇게 되면,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본다. 식당은 금전적인 손해도 손해이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그 손님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된다. 미안해서 두 번 다시 그 식당에 갈 수 없는 까닭이다. 돈도 잃고 손님도 잃는다.

 

 

(경향DB)

 

식당으로서 화가 날 때도 있다. 손님이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아, 지금 다른 식당에 와 있는데?”하는 경우다. ‘양다리’를 걸쳐 놓는 거다. 식당과 손님은 서로 약속에 의해 서비스를 사고팔 뿐이다. 약속을 깨기 위해서는 규칙이 있다. 전화 한 통 걸어주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참 이해가 안된다. 물론 준비한 요리 재료를 쓰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지만,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 취소요청을 한 손님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서양은 이런 문제에 대해 아주 민감하다. 예약할 때 신용카드 번호로 예치금을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런 걸 요구했다가는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손님이 왕이기 때문일까. 외국인이 주로 다니는 이태원의 한 술집은 예약시간보다 이십분 이상 늦으면 다른 손님에게 테이블을 준다는 규칙이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약 부도가 너무 많은 한국인 손님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이라고도 한다. 차가 어지간히 밀리는 서울에서 이런 규칙은 야박한 감이 있지만, 전화도 받지 않는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며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건 참 딱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반 식당에서 문 닫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이런 규칙을 적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무례하고 이기적인 손님이 식당만 괴롭히는 건 아니다. 그 식당에 꼭 가고 싶었던 다른 손님들의 기회를 뺏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어떤 식으로든 ‘펑크’난 비용을 분담하게 되어 있다. 지하철을 무단으로 무임승차하면, 결국 시민들이 그 비용을 분담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약문화는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재는 척도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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