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국산 고등어 살려주세요

나쁜 소식은 말 타고 가고 좋은 소식은 기어간다는 말이 있다. 지금 방사능과 관련된 시중의 분위기가 딱 그렇다. 정부에서 검사해서 안전하다고 해도 두터운 괴담의 벽 앞에서 먹혀들지 않는 듯하다. 명태와 동태는 죄다 일본산이라느니, 후쿠시마산 고등어가 유통되었다느니 하는 것이 바로 괴담이다. 시중의 불안한 심리는 곧 여러 사람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친구들 몇몇이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에 국내 최대의 고등어위판을 하는 공동어시장이 있다. 등줄기 무늬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싱싱한 고등어가 팔리지 않아 냉동창고로 직행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값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위기에서 아무도 속 시원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뉴스가 되는지 마는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문제없다”고 하는 정도다. 긁어부스럼이 될지언정 어깨띠 두르고 시장통에서 고등어를 먹는 쇼를 해보는 정치인도 없다. 선거나 있어야 오시는 분들이니 뭐….

 

얼마 전에 고등어 연구로 박사를 받은 황선도 선생의 신간을 읽었다. 도판까지 그려서 고등어의 생애를 설명한다. 우리나라 고등어는 해류의 흐름상 방사능 문제가 있는 일본 지역으로 건너가지 않는다. 바닷속 천길 캄캄한 내력도 환하게 밝혔다. 과학의 힘으로 고등어의 일년 살림살이를 다 파악해놨다. 우리 영토의 좌우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제주도 근처로 간다. 그러다가 다시 올라온다. 그게 전부다. 우리 고등어도 남아도는데 일본산 고등어가 수입될 리 없다. 좀 믿어줄 때는 믿어주자.

 

 

방사선 측정기로 고등어도 점검 (경향DB)


기름이 좌르르 오르기 시작한 고등어는 지금이 제철이다. 툭툭 잘라서, 무 두툼하게 깔고 냄비에서 지져내면 이런 맛이 없다. “푹 익은 무가 더 좋네” “고등어는 역시 촉촉한 뱃살이 최고네” 등 말도 많고 흥겨운 음식이다. 바다를 초고속으로 달리던 ‘스프린터’(황 박사의 말)의 살은 진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강력한 속도감의 원천인 붉은살은 금속성의 맛이 돌도록 강렬하고, 누릿한 뱃살은 기름져서 혀에서 녹는다.

 

어려서 어머니의 장바구니에는 신문지에 둘둘 말린 고등어자반이 한 손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찬 없던 시절에 자반을 지지고 굽고 끓이면서 4남매의 입맛을 맞췄다. 자반이란 밥 먹는 걸 돕는다고 해서 좌반(佐飯)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왜 아닌가. 자반 한 토막에 따로 반찬이 필요없었다. 나는 굵은 고춧가루가 얹힌 자반 조림을 유달리 좋아했다. 아버지는 부러 대가리에 붙은 살을 뜯었다. 다 발라먹고 난 고등어는 마치 당시 우리 살림살이처럼 남루했지만, 그런 내력을 겪으며 우리는 오늘까지 살아왔다.

 

한때 제주도에서 살던 유명한 문인은 이렇게 읊었다.


“너의 그 푸르른 힘을 빌려 간신히 그 시절을 지나왔다.”

 

그는 고등어의 몸통이 마치 바다 자체를 내포한 기호로 보인다고도 했다. 바라보고 있으면 아, 이건 바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좋은 고등어 눈이 팔리지 않는 냉동창고에서 빛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