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유럽엔 룸살롱이 없다

유럽에 있을 때, 현지 여행가이드들을 만나면 아주 재미있는 뒷담화가 많았다(유명한 분들, 정말 조심하시라). 홍세화 선생님도 파리 망명 시절, 웃지 못할 일들을 당신의 책에 조금 써놓은 적이 있다. 한국의 남자들이 오면 뭔가 은밀한 요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화끈한 데를 찾는 것이다. 맞다. 룸살롱 같은 곳이다. 유럽에는 아예 대놓고 성을 사고파는 나라는 있지만, 한국의 룸살롱 같은 곳은 없다. 성매매는 어떤지 몰라도 룸살롱처럼 여성비하적인 환경은, 적어도 유럽의 사고방식으로는 허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 같다. 한국은 정말 룸살롱 천국이다. ‘한국 수컷들은 툭 터진 데서 술 마시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좁은 방에 넣어놔야 한다’고 웃겼던 탤런트 정한용 선생 말이 생각난다. 하여튼 한국의 룸살롱은 전 우주 역사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해야겠다. 중국에 룸살롱 문화를 이식한 건 한국인이라지 않은가.


 

(경향DB)


그런데 룸살롱에 자기 돈 주고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개 ‘접대’다. 비싼 소 등심 백번을 사느니 룸살롱 한 번 데려가는 게 ‘접대발이 더 선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이런 곳이 없는 유럽은 접대를 어떻게 하나. 대개 식당에서 한다. 밤 열두 시, 한 시까지 풀코스로 먹이며 접대한다. 그쪽의 식당들은 그렇게 먹고산다. 우리처럼 일차 이차 이어지며 가는 경우도 드물고, 식당에서 좋은 음식과 술로 접대하는 게 일반적이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접대하는 건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국내 룸살롱 시장 규모만 8조원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사교육 시장은 30조원 규모다. 돈이 서민들 먹고사는 동네쪽으로 돌지 못하는 듯하다.

 

접대든 가족 모임이든 식당을 가기 어렵다. 고등학생 둘을 키우는 내 친구는 연봉이 일억원 가까이 되는 괜찮은 직장인인데 가족들과 괜찮은 식당에서 밥 한 끼 먹기 부담스럽다. 애들 사교육비로 한 달에 200만원 가까이 나가고 자율고인지 뭔지 하는 학교라 등록금도 웬만한 전문대학 뺨친다. 가처분 소득이라는 유식한 말이 있는 모양인데, 그 친구가 양복은 번듯하게 입고 다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다. 내가 일하는 식당에는 어지간하면 못 온다. 외식 대신 동네에서 닭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룸살롱은 가끔 간다. 이게 뭔 짓이냐.”

 

정말 뭔 짓인지 모르겠다. 이웃 일본은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고들 한다. 우리는 시장(市場)은 부자인데 가게는 가난하다고나 할까. 돈은 적지 않게 시중에 도는 것 같은데,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식당이 가장 많은 나라여서일까. 식당주인들이 모두 ‘욕쟁이 할머니’로 바뀔 것 같은, 으스스한 가을이다. 물론 나도 욕쟁이 주방장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