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기름, 얼마나 드십니까

롤랑 바르트가 일본식 튀김인 덴푸라를 보고 “그 어느 튀김도 가질 수 없었던 처녀 같은 청순함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덴푸라는 아주 묽은 반죽을 입혀 가볍게 튀기는데, 그래서 내용물이 환하게 비친다. 깻잎 같은 걸 그렇게 튀겨놓으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 튀김의 면모를 이색적으로 해석한 셈이다. 튀김은 이처럼 매혹적인 요리법이다.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바삭하게 만들어주며, 별로 신통치 않은 재료도 전혀 새로운 맛으로 변모하도록 한다. 앞서의 깻잎 한 장, 얇게 저민 고구마 한 점, 퍼석한 닭가슴살조차 튀김의 세례를 받아 혀를 즐겁게 하는 미각으로 바뀌곤 한다.


한 환경운동단체에서 강연을 하다가 질문을 받았다. “우리가 너무 기름을 많이 쓰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기름 남용 시대에 산다. 자동차를 굴리는 기름 말고도 음식에 쓰는 기름도 그렇다. 본질적으로 두 기름은 같다. 식용유로 차를 굴릴 수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미 식용유조차 미각의 선에 머물러 있지 않다. 농부가 기름이 될 만한 곡물을 수확해서 짜고, 가용으로 쓰고 남는 걸 내다 팔고, 자식들에게 돌리고 하는 식의 소박한 체계를 넘어서 버렸다. 곡물 메이저들은 생산한 곡물을 연료로 팔까, 식용으로 돌릴까 결정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자가 됐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수수한 기름 한 방울의 서정은 속내로 들어가면 이미 환상이 되어버린 시대다.

 

 

(경향DB)

 

그건 그렇다치고, 우리의 식용유 소비량은 상상 외로 크다. ‘치킨’ 같은 음식에 들어가는 기름만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우리 음식 사회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외식과 식용유 사용량의 폭발적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튀긴 음식을 싸게 사먹고 거의 전량의 기름을 수입한다. 기름의 면면을 보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공장에서 가공용으로 많이 쓰는 팜유는 열대우림을 파괴해서 심은 야자나무에서 얻는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곡물 메이저가 좌지우지하는 곡물이 콩과 옥수수이고, 그 기름이 우리의 일상 식용유다. 유전자조작 혐의 같은 것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다.

 

세상은 바뀌었고, 옛날처럼 우리 땅에서 나는 기름을 쓰자는 소박한 주장을 전적으로 밀고 갈 수도 없다. 그렇지만 기름 소비량을 줄여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한 과제다. 그 딱딱한 콩과 옥수수에서 기름 한 병을 짜려면 얼마나 많은 분량의 곡물이 필요하겠는가. 기름, 귀하게 아껴 써야 하는 시대다. 음식과 관련된 환경문제에 기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개수대로 버려지는 기름이 강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문제는 제외하고도 말이다. 한편으로 거의 귀하게 이용되지 못하고 천대받는 동물성 지방에 대한 혐오를 좀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겹살 2~3인분을 졸이면 한 컵의 돼지기름이 나온다. 그저 삼겹살을 굽고, 찌개에 넣어 먹으면서 우리가 늘 섭취하는 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눈으로 보면 사람들은 놀란다. 동물성 기름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름, 우리 몸에 정말 필요한 요소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를 다시 공격하고 있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종로의 ‘진짜’ 중국음식  (0) 2013.10.11
알고보니 중국배추  (0) 2013.10.04
서울의 노포 ‘부민옥’  (0) 2013.09.13
동물 윤리  (0) 2013.09.06
요리사들은 뭘 먹을까  (0) 201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