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서울의 노포 ‘부민옥’

강북직할시, 강남특별시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강남이 마치 이탈리아처럼 분리독립운동을 안 하는 게 다행이다. 이탈리아의 북부 일부 부자들은 힘들게 벌어서 낸 세금으로 남쪽 ‘도둑놈’들에게 복지비용을 퍼주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 덕에 북부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 총선에서 큰 표를 얻었을 정도다.

 

서울의 부가 강남으로 몰린 지는 오래되었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강남몽>에서 일찍이 강남이 왜 꿈의 도시가 되었는가 짚어나간다. 강남이 황금시절을 열어갈 때, 내 친구들도 그쪽으로 가는 이삿짐 차를 탔다. 한번은 이사 간 친구집에 놀러갔더니 배추밭 사이, 몇십미터 간격으로 띄엄띄엄 똑같이 생긴 2층 양옥이 서 있어서 놀랐다. 시멘트와 ‘부로꾸’가 동네에 지천으로 쌓여 있는 살풍경한 동네였던 기억이 난다. 강남은 그렇게 무서운 욕망으로 성장했고, 강남으로 간 친구들은 부를 얻었다. 반면 강북을 고수한 친구들은 몇십 년째 거의 오르지 않은 집값과 발전 없는 생활 인프라에 혀를 찬다.

 

강북 도심도 그렇다. 청계천 일대나 외국 관광객이 몰리는 몇몇 지역을 빼면 어깨가 축 처졌다. 며칠 전에 다동에 갔다. 한때 ‘넥타이들’과 언론사 직원들로 북적이던 노른자위 동네였었는데, 전체적으로 무게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주5일 근무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손님을 빼앗아갔다. 기업들은 자꾸 강남으로 짐을 꾸리니 돈도 덜 풀린다. 게다가 지금은 지긋지긋한 불경기 아닌가.

 

 

(경향DB)

 

그래도 다동을 지키고 있는 전통적인 식당들이 건재해서 반가웠다. 늦은 오후, 샐러리맨들이 다 빠져나간 자리는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친구들도 보고, 시내 나들이도 하는 눈치였다. 양곰탕으로 유명한 부민옥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잊고 있었던 서울 사투리를 들었던 것이다. 돈을 ‘둔’이라고 하고, ‘임자’라는 2인칭이 있는 서울 사투리 말이다. 아마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동창들 모임에서 그런 사투리가 튀어나왔을 것 같다. 적당히 소란스러운 정경을 배경으로 양곰탕을 입에 넣자니, 감정이 조금 복받쳤다. 서울 사투리만큼이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맛이었다.

 

한국의 외식은 이제 퓨전과 외국의 맛에 점령당했다. 그나마 노포라고 할 몇몇 집들이 이 강북의 도심에서 겨우 명맥을 잇는다. 곰탕과 설렁탕, 해장국, 추탕, 불고기 정도가 노포의 맛이 아니던가. 너무 진하지 않게 심심하고 소박한, 고명인 양조차도 부들부들하고 깊은, 이 양곰탕 맛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최근에 본 주영하 선생의 신작 <식탁 위의 한국사>에는 근대적 외식의 시작을 ‘탕반’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 그릇의 장국밥, 설렁탕과 곰탕이 바로 탕반의 대표이고 그것이 우리 민족 외식 문화의 단초라는 것이다. 온갖 진기한 먹을거리가 널린 서울에서 다시 우리가 곰탕을 찾는 건 그런 까닭일 것이다. 뽀얗게 기품 있는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넣고 잘 지은 밥 한 술을 떴다. 맛도 맛이지만, 뼈대 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서울을 이루던 여러 정신사적 문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요즘 잦다. 그 가운데 노포가 된 서울의 음식점에 대한 연구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에도 이 맛을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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