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요리사들은 뭘 먹을까

요리사들은 뭘 먹는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매일 요리를 주무르는 사람들이니까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답부터 하면, 참 허술하게 먹는다. 식단을 짜서 제대로 먹는 경우는 드물고 허드레 음식이 요리사들 차지다. 팔고 남은 재료,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재료, 손질하고 남은 재료가 요리사들 밥이다. 



예를 들면 갑자기 고등어로 며칠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손질해놓은 고등어 요리가 주문이 적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 일본 방사능 누출로 뒤숭숭한 여론이 손님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은 그 고등어가 요리사들 입으로나 들어가고 만다. 국내산 원산지 증명서를 받아놓고 있어봐야 손님 마음을 어떻게 다 돌릴 수 있겠는가. 고등어가 뭔 죄람, 이러면서 고등어 찌개에 구이에 튀김에 조림에 샌드위치까지 해먹고 만다. 



이뿐만 아니다. 대체로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맡고 음식 연기를 쐬고 있으니 입맛이 있을 리 없다. 손님이 많아 일이 밀려서 대충 국수나 라면을 삶아 해결하기도 한다. 단언컨대, 한국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먹는 직업군이 바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한 브랜드로 질려버리니 온갖 라면 요리법이 동원된다. 근자에 맛있게 먹은 건 고등어라면이었다. 싱싱한 고등어를 포 떠서 그냥 라면에 넣고 끓이면 아주 삼삼한 맛이다. 결국은 고등어 처분 타령이 되었군….




외국의 요리사라고 해서 별난 걸 먹는 건 아니다. 요즘은 SNS로 외국 요리사들과 휴대폰 속에서 친구를 맺는다. 일본은 요리사들이 먹는 음식을 ‘마카나이’라고 부른다. 수북하게 푼 흰 쌀밥, 된장국, 채소절임에 생선 한 토막. 또는 손질하고 남은 재료로 만드는 파스타가 많이 SNS에 올라온다. 서양 요리사 친구들도 올리는데, 샌드위치 아니면 파스타다. 간혹 스테이크를 써는 장면이 올라와서 ‘역시!’ 하고 감탄(?)을 한다.



요리사는 참 불행한 직업 중 하나다. 시쳇말로 남들 놀 때 그들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게 요리사다. 가족의 행복한 저녁식사, 이런 말은 남의 세계다. 일을 마치면 이미 심야이고, 집에 가면 아이들은 잔다. 일 마치고 요리사들과 소주라도 한잔하는 게 그나마 낙이다. 간혹 잡지사에서 ‘요리사들의 단골집’ 뭐 이런 아이템을 취재하는 경우가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매우 간단하다. ‘문 연 집’이다. 문이 열려 있으면 어디든 간다. 한여름, 냉면 추렴을 하고 싶어도 일 끝날 때까지 문 여는 집이 없어서 오후에 짬을 내어 택시를 밟아야 겨우 한 그릇 들이켰던 기억도 있다. 


밤비노 캡처



요리사들은 멋지고 풍요로운 음식을 준비하지만, 정작 그들은 고흐의 식탁에 나오는 감자 먹는 사람들 같다. 겨우 돈을 추렴해서 돼지고기나 굽고, 소주병을 쓰러뜨리는 게 고작이다. 당장 다음날 출근이 걱정돼 심야에 시작하는 요리사들의 회식은 아주 급하다. 거푸 술잔을 비우고 재빨리 탄 고기를 우물거린 후 부리나케 막차를 향해 달린다. 그들의 피곤한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착잡하다. 이 땅의 별 희망 없는 노동형제들의 굽은 등이 보인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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