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피맛골의 애환

재개발이란 말은 용어 자체가 이미 수직적이고 폭력성을 내포한다. 본디 개발이란 말부터 철저하게 권력자의 의지가 충만하다. 여기에 ‘재’개발이란 당초 그 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는 실체적인 건물과 그 사이를 채우는 공간의 기운,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람과 집단의 기억을 다 허물게 되어 있다. 어느 날 놀이공원 짓듯이 바꾸어버린 청계천도 그 현장이다. 청계천을 복구하는 일이야 누가 반대할 것인가. 문제는 그것이 레고 쌓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결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야는 넓어졌지만, 청계천과 고가 근처에 삶을 지었던 집단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피맛골도 그렇다. 최악의 도심 재개발로 손꼽히는 현장이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대포 한 잔을 해도, 정취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 근처에 아예 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도심 재개발이라면 으레 직선으로 구획된 시원한(?) 조망조차 이곳에는 없다. 뚱딴지같은 대형빌딩들이 도대체 어떤 의도로 배치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군데군데 늘어서 있다. 재개발의 폭탄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예전의 구 상가 지구와 겹쳐서 더욱 볼썽사납다. 개발을 밀어붙인 시 당국도, 원 거주자도, 시민도 어느 누구도 이 개발의 이익을 보지 못한 희한한 케이스다. 피맛골을 상징하던 가게 주인들도 장사를 그만두거나 뿔뿔이 흩어져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청진동 89번지를 호적으로 지니고 있는 남자가 있다. 최준용씨. 피맛골에서 태어나 지금도 하루 종일 상처 깊은 이 현장에서 산다. 바로 유명한 해장국집 청진옥의 3대째 주인이다. 멀쩡한 노포가 헐리고, 그는 남의 빌딩 한구석에 세 들어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만들어오던 해장국을 여전히 같은 손맛으로 끓여내고 있지만 속이 쓰리다. 청진옥은 1937년에 창업한 국내 최고(最古) 식당 중의 하나다. 우리는 이런 유서 깊은 식당 하나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 이러면서 이웃 일본은 이백년이 넘는 식당이 있네, 삼백년이네 부러워한다.

 

 

(경향DB)

 

원래 청진옥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 인근 종로구청 자리에 있던 새벽 나무장에 모인 나무꾼들에게 국을 팔면서 시작됐다. 디스코클럽에서 밤새 논 무리들의 해장국으로, 밤일 마친 심야 노동자들의 2차, 3차 자리로 번성했었다. 요새는 젊은층과 피맛골을 잊지 못하는 노년층이 시간대를 달리해서 자리를 꽉 채운다.

 

‘내포’라고 부르는 소의 세 가지 내장과 뼈다귀로 푹 곤 국물도 여전하다. 요란한 소스와 이국적 풍미로 입맛을 바꾼 줄 알았던 젊은층이 줄을 서가며 이 가게를 찾는 광경은 입맛의 유전이라는 면에서 그나마 다행스럽고 기꺼운 일이다. 손님도, 가게 터도 바뀌었지만 이 가게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근속 연수 합계가 200년이 넘는,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들이다. 열다섯 살에 시작해서 사십 년이 넘게 가마솥을 지키고 있는 주방장을 보면, 그래도 우리에게 오래된 것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엔 역시 ‘굴’  (0) 2013.12.27
거리에도 요리사가 있다  (0) 2013.12.20
문학 속의 음식  (0) 2013.12.06
임종 음식  (0) 2013.11.29
예약  (0) 201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