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거리에도 요리사가 있다

요즘 양극화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식당가도 비슷한 듯하다. 골목의 허름한 밥집들은 손님이 줄고 경쟁이 심해졌다. 존폐를 걱정한다. 반면 강남과 분당, 판교에서 제법 값이 나가는 식당들은 큰 어려움이 없는 듯하다. 알다시피 나는 비싼 음식을 만든다. 한 그릇에 2만원 안팎 하는 음식들이다. 본디 가난하게 태어나고 자란 내가 이런 음식을 만드는 게 합당한 것인지, 무엇보다 양심에 기꺼운 일인지 늘 반문하게 만든다. 자본주의란 돈이 돌아야 하고, 부자들이 주머니를 열어야 돌아가는 법이다. 그러므로 내가 만드는 좀 비싼 음식들이 더 잘 팔리는 게 무용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태생적인 이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 자기반성이랄까, 번민을 더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이 내게 왔다. <악마의 요리>라는 책이다. 요리책이라면 흔히 요리법이 중심이 되게 마련인데, 이 책은 순전히 요리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거기까지는 종종 접해본 책일 수 있겠다. 요리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없지 않았으니. 그런데 이 책의 비범함은 다루는 방식에 있다. 모두 열일곱의 요리사를 인터뷰했는데, 문자 그대로 악마적 요리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한 네덜란드인 요리사에게 갔다.

 

 

밤 카트(경향DB)

 

밤 카트(Wam Kat). 두 개의 박사학위가 있으면서도 스스로 난민처럼 살고 있는 남자. 그는 세계화 시위에 언제든 나타나 시위대의 밥을 해준다. 그는 늘 말한다. “그래도 대부분 재료비는 충분하게 모금됩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가난하지만 도덕심이 있거든요.” 그의 얘기를 한 활동가에게 했더니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세계의 최고급 요리사들이 모인 행사가 있었는데, 요리쇼를 하면서 버린 재료만 줍는 추레한 남자가 있더란다. 그러더니 그 재료만 모아 요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너무도 선명했다. 우리 할머니들이 늘 하시던 말씀과 같다. “먹는 거 버리면 벌 받는다!”

 

그를 소개한 책의 말미에는 요리법이 하나 붙어 있다. 우아한 요리가 아닐 것이라고는 했지만 과연 그다웠다. 요리법의 기준이 자그마치 100인분. 시위대라면 적어도 100명 이상일 테니까. 거기에다가 맛있는 육수도 없이, 시판되는 농축조미료를 버젓이 재료에 올려놓았다. 시위대가 먹는 음식에 그런 재료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무엇보다 그 음식은 수프였다. 차가운 포도와 광장에서 분노를 토로할 시위대가 먹을, 가장 적합한 음식! 나눠주기 좋고, 뜨거운 김이 펄펄 올라오는, 가장 민중적인 음식!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도 수많은 밤 카트가 있었다. 고단한 세월, 시위 현장에서 김밥을 나눠주던 따뜻한 손들 말이다. 밤 카트. 인터넷에서 그의 얼굴을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름없는 우리들의 수많은 밤 카트들을 기억하기 바란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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