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당 영업시간

한번은 군산 외곽에 짬뽕이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하여 달려갔다. 짬뽕 맛보다 놀라운 건 영업시간이었다. 오전 열한 시에 열어서 오후 세 시에 닫았다. 더러 정해놓은 그릇 수가 다 팔리면 그 전에도 닫는다. 요즘은 저녁시간에 중국집에서 ‘청요리’를 시켜놓고 술잔 기울이는 사람이 줄어서일까. 하기야 저녁시간에 문 연 중국집을 들여다보면 테이블이 텅텅 비어 있기 일쑤다. 그렇다고는 해도, 달랑 네 시간짜리 영업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세계에서 이렇게 짧게 영업하는 식당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보통 식당은 하루 열두 시간은 열어둔다. 밤샘 영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손님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요리사를 파트타임으로 쓸 수 없으니 일정한 시간 동안은 문을 열어야 한다. 종일 영업은 물론이고, 휴일도 드물다. 상당수 식당은 사실상 연중무휴다. 직원은 쉬더라도 주인은 늘 나온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부러운 건 그들의 여유와 사회적 ‘약속’이었다. 일반 상점은 보통 점심엔 서너 시간 쉰다. 식당도 점심이 끝나면 저녁까지 서너 시간 문을 닫는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로 통용되므로, 문을 안 열었다고 화내는 사람도 없다. 한국 같으면, 혹시라도 다른 가게로 손님을 빼앗길까 두려워 문을 닫지 못한다. 그쪽 식당은 주5일 근무는 아니더라도 일주일 하루 반은 쉰다. 쉬어야 창의도 나오고 생산성도 올라가는 걸 다들 알지만, 한국은 관습의 벽에 부딪혀서 쉽게 실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임대료가 무서워서 불가능하다. 월세라도 ‘뽑으려고’ 무리해서 손님이 있든 없든 문을 연다. 앞서 군산의 중국집이 네 시간짜리 영업을 하는 건 아마도 월세 부담이 적거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동산 비용이 적어서 자기 집인 경우가 흔하고, 월세래야 얼마나 하겠는가. 요리사인 나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요즘 유행어로 ‘로망’이라고 해도 좋겠다. 하루 네 시간만 딱 열고, 여름과 겨울에는 보름 정도씩 문 닫고 여행을 가고(여러분들의 야유가 들려온다).


한국 식당의 종일 영업은 주인은 물론 노동자의 심신을 황폐화시킨다. 보통 식당 요리사들은 아침 아홉 시면 나온다. 일반인의 출근시간과 비슷하다. 그러나 퇴근은 보통 열 시다. 하루 열세 시간을 가게에 ‘갇혀’ 있다. 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대신 중간에 가게 문을 닫고 잠깐이라도 휴식을 보장한다. 여름과 겨울의 긴 ‘바캉스’도 있다. 한국은 여전히 쉬지 못하는 나라다. 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도 오후 서너 시에 다른 식당에 잘 가지 않는다. 그 시간에 불쑥 들어가서 밥을 청하면 어디선가 부스스한 표정의 아주머니들이 홀 구석에서 억지로 일어나는 경우를 본다. 휴식을 방해한 셈이다. 오후에 ‘준비 중’이라고 하여 영업을 일시 중지하는 식당이 조금씩 늘고 있다. 짧게나마 휴식과 안락한 직원들의 식사를 보장해주자. 다 같이 닫으면 손해볼 사람도 없다. 그 시간에 배고픈 사람들은 간이음식을 이용하는 ‘관습’이 만들어지면 된다. 오래전 얘기인데, 이탈리아 여행 중에 받은 최초의 충격은 오후 세 시에 일어났다. 배가 고파 식당 문을 두들겼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 시간에는 모니카 벨루치(유명 여배우)가 와도 안 팔아. 이 나라 어디든 마찬가지야.”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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