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식당 채권에 투자하실래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의 사무실이 서울 광화문 국제극장(지금의 동화면세점) 뒤편의 골목에 있었다. 가끔 아버지는 나를 사무실에 데려가 점심으로 근처 식당에서 섞어찌개를 사주셨다. 오징어·돼지고기에 육수를 부어 매콤하게 끓여낸 음식이었다. 짜장면이 외식의 전부였던 시절,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섞어찌개의 맛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추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대학 시절부터 피맛골·청진동의 음식점들을 참 열심히도 다녔다. 나는 거기서 학교나 회사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식당은 나에게는 또 다른 학교였다. 그러나 그 식당들의 절반쯤 사라진 것 같다. 아버지와 갔던 섞어찌개집은 내가 중학생일 때 없어졌다. 심지어 아버지 사무실이 있던 건물도, 국제극장도 사라졌다. 대학 시절 다녔던 피맛골·청진동 골목의 식당 역시 대부분 헐렸다.  


코로나19는 이런 식당들을 더 빠르게 사라지게 할 것 같다. 카드 매출로 보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3월 대다수 음식점 매출이 지난해 대비 70% 이상 줄었다. 게다가 음식 자영업자의 70%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폐업을 고려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식당들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들을 도우려는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미국의 식당 채권도 그중 하나다. 미국은 코로나19 초기에 이동이 금지됐다. 그런데 집 밖으로 못 나가는 상황에서 동네 식당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레스토랑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선결제하는 시스템인 ‘다이닝 본드’를 선보였다.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10만원을 누리집(모바일 서비스는 아직 없다)에 가입한 지역 식당에서 선결제하면 나중에 12만~13만원어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식당은 선금을 받아 좋고, 고객은 20%가량 혜택을 볼 수 있어 좋다. 식당이나 고객이 내야 하는 수수료는 전혀 없다. 이 시스템은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는 레스토랑을 돕기 위해 홍보전문가인 헬렌 패트리키스 등이 고안했다. 이 시스템 덕에 레스토랑 500여개가 최소 수천달러에서 최대 6만달러의 현금을 확보했다. 한국도 음식점 등을 돕기 위해 ‘착한 선결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온라인 생태계를 만든 미국의 아이디어가 좀 더 지속 가능해 보인다.


왜 시민들은 스스로 지역 식당을 문화재나 생태계처럼 보호하자고 나섰을까? 호주 사회학자 조안 핑켈스타인은 “식당은 단순히 연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실험이 일어나는 주체성의 학교”라고 말했다. 나는 내 ‘모교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란다. 그곳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의 한 부분이다. 한국에도 이런 채권이 있으면 좋겠다. 투자할 의향이 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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