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문제는 소고기다

최근 경기 안산시 한 유치원에서 110여명의 유치원생들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렸다. 이 중 60명은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2일 현재 16명의 아이가 대장균 독소에 적혈구가 파괴돼 신장 조직이 망가지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을 보이고, 4명은 투석 치료를 받았다.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났지만 보건당국은 식중독의 원인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유치원 측이 규정에 따라 보존해야 하는 음식 가운데 일부를 폐기한 탓이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신장 투석까지 받고 있는데 그 병의 원인조차 모른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게다가 ‘흙’이 원인으로 거론된다니 의아하기까지 하다. 정부가 지나치게 인과관계만 따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공장식 축산이 우리 식탁뿐 아니라 건강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그 중심엔 소고기가 있다. 장출혈성대장균은 1982년 미 오리건주에서 어린이 47명이 소고기 분쇄육 햄버거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기 전까지는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미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수백만년 동안 풀을 먹던 소에게 사료로 옥수수를 먹이면서 소의 위에 변종 박테리아가 생겼는데 그게 O157:H7”이라고 말했다.

 

미 식품의약국(FDA) 자료를 보면, 이 식중독의 75%는 소와 우유 가공품이 원인이다. 나머지 25%에는 채소뿐 아니라 물, 흙 등 이 균이 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원인균으로는 O157의 변종인 O26, O103 등이 74%를 차지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년에 장출혈성 식중독이 무려 26만5000건이나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이 병은 광우병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생명윤리를 저버리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괴롭혀서 생긴 질병이다. 문제는 생명을 무시한 대가로 잇속을 챙긴 어른들이 아니라 아무 잘못도 없는 순수한 아이들이 이런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1~2016년 5년간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 확진환자 336명 가운데 용혈성요독증후군까지 진행된 경우는 24명(5.4%)이었는데 이 가운데 58.3%가 5세 미만의 아이였다. 

 

우리가 1종 전염병인 이 식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은 소고기를 잘 익혀 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쩌면 더 시급한 것은 가축의 생명을 존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마련과 실천이다. 우리가 값싼 고기를 얻기 위해 생명에 눈감은 대가로 아이들이 웃음을 빼앗기고 있다. 아이 웃음이 없는 미래는 미래가 아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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