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요리사 전성시대의 그림자

최근 어떤 조사 결과를 보니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20년 가까이 되는 회사가 꽤 있다. 월급 많고 속칭 ‘편안한’ 직장들이다. 요리사는 어떨까. 실제로는 요리사로 일하나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일당직 여성 요리사들이 많아 정확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근속연수를 3년 미만으로 보고 있다. 끈기가 부족해서 그럴까. 천만의 말씀. 창업한 식당의 생존기간이 대개 3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니고 싶어도 직장이 없어져 창졸간에 실업자가 되고 만다.

요리사는 숫자로 국내 5대 직업군에 든다. 그러나 평균 급여는 바닥이다. 노동시간은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길고, 신분 보장도 잘 안된다. 경기를 가장 많이 타서 늘 신분의 위협을 느낀다. 경기가 나쁘다고 휴대폰을 끊지는 않지만, 외식은 바로 줄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청년들이 요리업계로 속속 쏟아져 들어온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외식업이 크게 늘면서 수요가 커진 이유도 있다. 원하면 언제든 요리사 모자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일반 직장에 취직이 안되기 때문인 듯하다.

도대체 당대 한국에서 무얼 해서 먹고살 수 있단 말인가. 청년들이 약간의 종잣돈을 들고 창업하는 분야도 대개 외식업이다. 예전 요리사 선배들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이유로 요리사가 되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요리직종은 생존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요리사가 나온다고 한다. 대중미디어는 늘 대중의 기호에 더듬이를 대고 있다. 요리사가 인기 있으니, 그들을 불러 예능에 채워넣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한다.

이런 요리사 붐에는 그림자도 있다. 거개 그렇지만, 대중미디어는 요리사를 상품으로 포장한다. 요리와 요리사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한다. 극소수를 제외한 요리사들은 완벽한 노동자일 뿐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요리는 신나는 오락이며, 요리사는 늘 행복하게 비친다. 천만의 말씀이다. 요리사의 대다수는 여전히 실직 불안과 저임금, 기술 습득에 대한 부담, 치열한 경쟁의 고통을 안고 일한다. 산별노조는 고사하고, 현장에 맞는 요리사 표준임금안 같은 것들도 없다.

한마디하자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이 대한민국 전체 요리사의 어떤 상징이나 대표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달라. 미디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기술을 닦아 후배들을 양성하는 훌륭한 요리사들이 많다. 우리 요리가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것도 그들 덕이다. 요리사 선배로서 요리사 지망생들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지만, 요리사는 고통스럽고 가장 취약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에게도 당부하자면, 맛있는 음식은 유명세와는 대체로 반비례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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