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목포의 맛

요리사 후배들과 정기적으로 우리 땅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음식 재료와 맛을 탐구한다는 명목이고, 실은 술추렴이다. 고속열차 개통기념(?)으로 목포까지 몸을 실었다. 유달산에 올라 시내를 조감한다. 이난영의 노래에 나오는 삼학도가 빤히 보인다. 멀리 섬을 돌고 돌아 일제의 공출선이 ‘내지’로 향했을 것이다. 근처 산기슭에 있는 근대박물관을 들르면, 개항과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전라도식 인심을 보여주는 떡 벌어진 한상차림의 백반으로 여행자의 허기를 달랜다. 낙지초회에 아삭한 조기찌개가 끓고, 갖은 찬과 젓갈이 그득하다. 목포는 민물(영산강)이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또 복잡한 해안선은 다양한 바다 생물의 은거지가 되어 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밥집에는 묵향 서린 그림과 글이 두어 점 걸려 있어서 풍취를 돋운다. 곰삭은 갓김치에 살살 녹는 병어조림을 하는 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지역마다 독특한 형태의 식당을 찾는 것이 여행의 맛인데, 목포에서는 ‘스낵코너’가 눈에 든다. 지금은 대개 ‘소주방’이라는 멋없는 이름으로 바꿔 달았는데, 목포식 간이술집의 한 상징으로 지역민들에게 유명하다. 마산의 통술집이나 통영의 다찌집처럼 하나의 전형적인 해안도시 술집으로 성격을 지켜갔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부엌을 지켜온 할머니들이 제철 해산물을 진하게 요리해낸다. 이 봄의 별미인 간재미회를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서대를 쪘다. 무릇 모든 음식의 맛은 그 재료가 머금은 대지와 물의 영양에서 온다. 목포 앞바다의 속사정이 맛으로 드러난다.


목포 원도심은 이미 썰물처럼 사람과 돈이 빠져나갔다. 멀리 하당이니 남악이니 하는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동력을 잃고 있다. 원도심 중앙에 텅 빈 거대 쇼핑몰이 있다. 오래된 도시의 시내가 어떻게 쇠락해가는가 상징처럼 보여준다. 여행자들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 자리에 점점이 역사의 맛집들이 건재하다. 흑산홍어를 내는 전설적인 주점에서 코가 뻥 뚫리는 이 절묘한 요리 접시를 받았다. 주인 내외는 졸고, 술자리를 파했다. 소로 돌아가는 길,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어떤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담인데, 목포에서 묵어간다면 시내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시기 바란다. 커피 맛이 좋은 카페도 그 앞에 있다. 이튿날 아침, 다시 원도심을 걷는다. ‘○○라사’가 아직 있고-언제 양복 한 벌 맞춰볼 심산이다- 근대의 유물인 공갈빵과 누룩향 나는 단팥빵을 파는 빵집이 있다. 65년 된 중국집에서 파는 별난 짜장면인 ‘중깐’을 먹어볼 수도 있다.

목포는 일찌감치 개항지였고, 일제가 번성시킨 항구도시였다. 유달산 아래, 일제가 개활지에 조성한 시가지에는 적산가옥이 아직도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길을 천천히 걷노라니, 역사의 그림자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목포는 그런 곳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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