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인천의 맛

인천에 별 연고도 없지만, 애정을 갖고 종종 찾는다. 이유가 몇 있다. 첫째, 사라져버린 ‘서울’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경제성장의 세례를 받아 옛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인천의 구시가지는 개발의 광풍에서 비켜나는 바람에 오히려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소화(昭和)시대 초반기,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심지어 적산가옥을 그대로 쓰고 있는 싸리재라는 유명한 커피숍이 있다. 이 집의 천장을 보면 상량을 한 날짜에 ‘소화’라는 글씨가 적혀 있기도 하다(참고로, 아주 맛있는 커피와 기막힌 음악을 튼다). 1960~1970년대 건축기법인 ‘타일’을 외벽에 붙인 집들이 여전히 많고, 길을 걷노라면 낡은 철대문과 작은 마당, 장독대를 가진 그 시절 주택도 많이 남아 있다. 높게만 보였던 담 넘어 이제는 집 안이 훤히 보여서 괜히 슬퍼진다. 보존하기 위해 남겨진 게 아니라는 것이 어쩌면 인천시민이 겪었던 고난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요즘 차이나타운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 출입이 잦다. 근처 부동산도 들썩일 정도라고 한다.


차이나타운은 오늘의 인천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끌어안고 있다. 인천은 개항을 통해 번성했기 때문이다. 그 주변을 둘러싼 역사도 주목해야 한다. 국내 최초로 커피를 팔았다는 대불호텔 자리에 지금도 호텔이 남아 있다. 이 호텔 자리는 중화루라는 유명 중국식당으로 변했다가 올림푸스호텔, 다시 파라다이스호텔로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인천역으로 내려오면 그 현장이 바로 앞이다. 차이나타운에 중국요릿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천역과 부두를 끼고 있는 터라 하역노동자들이 드나드는 구역이 있었다. 지금도 몇몇 술집들이 그 명맥을 유지한다. 밴댕이골목이라고도 부르는데, 전형적인 노동자 막술집의 모습을 띤 집들이 대여섯 남아 있다. 요즘은 밴댕이와 병어가 나온다. 부두 하역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몰려와 싸구려 밴댕이회를 씹고, 매캐한 생선구이 연기 속에 회포를 풀던 현장이다. 이제 부두노동자들의 발걸음은 끊어지고, 옛 추억을 더듬는 은퇴 노인들과 나 같은 하릴없는 사람들이 들러 조용히 한잔 마시는 곳이 되어버렸다.

내키면 차이나타운을 되짚어 신포시장 쪽으로 갈 수도 있다. 전설적인 술집 몇 곳이 남아 있다. 시인의 라이브마스크가 붙어 있는 ‘전설’ 다복집과 대전집이 마주 보고 있고, 그 옆 골목에는 신포주점이 있다. 인천의 호방한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던 이런 집들의 경기가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다복집에서는 유명한 소힘줄탕도 팔고, 메뉴가 많은 대전집에서는 빈대떡과 족발을 시켜볼 수 있다. 신포주점에서는 박대구이와 보리새우탕에다 제철인 간재미찜을 한 점 먹어본다. 술집을 지키던 그 전설들은 세월의 부름을 받아 거의 퇴장해버렸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놔두었으면 하는 바람을 시민들은 갖고 있다. 요상한 도시개발을 한다고 역사의 현장을 뒤집어놓는 관의 행태가 얼마나 반시대적인지 목도한 이후의 일이다. 제발 내버려 둬! 흔적도 없이 사라진 피맛골의 전철을 인천에서는 밟지 않았으면 하는 게 이 서울시민의 바람이기도 하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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