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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진은숙이 본 ‘정명훈 논란’(2) -내가 보는 지휘자 정명훈

내가 보는 지휘자 정명훈

지휘자 정명훈이 세계적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이 일어났다. 유감스럽게도 ‘아니다’라며 이 논쟁의 불씨를 던진 쪽에서는 그것에 대해 전혀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그저 ‘세계적’이라는 수식어의 단어 분석을 하는 것에 그쳤다.
나도 ‘세계적’ ‘한국 최초’ ‘유일한~’ 등등의 수식어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담겨져 있지 않은 피상적인 단어로 쓰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국제적 명성이 있는’이라고 표현한다.)
누가 노래를 잘하냐 못하냐는 굳이 음악을 몰라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기악을 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가늠하는 데에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만 들어보면 대충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 현대 작곡가가 좋은 작곡가인지 아닌지는 거의 아무도 모르고, 지휘자에 대한 평가도 이와 비슷하게 어려운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휘라는 것은 그저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드는 행위이다. 지휘를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전공자들이 너도 나도 지휘를 한다. 그래서 지휘계만큼 수준의 폭이 넓은 데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부터 거장까지 다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추어가 꽤 된다.)
진정한 의미의 지휘자, 즉 한 작품에 대한 총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세한 손짓 하나에도 음악적 메시지를 담아 연주자들에게 전달해 그들로부터 음악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극도로 드물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한 지휘자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 항상 외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어느 오케스트라의 상임이냐, 음반을 어느 레이블과 얼마만큼 냈느냐, 대중들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느냐, 연봉이 얼마냐 등이 잣대로 사용된다. 누가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상임이면 그에게는 자동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부여된다. 

내가 정명훈의 지휘를 처음 것은 1983년 대학생 때였다. 그는 당시 서울시향(?)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피아노 서혜경)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를 연주했다. 나는 물론 너무 좋은 음악회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었기  그의 지휘자로서의 능력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동행했던, 당시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였던 발터 길레센 씨는 연주회 후에 흥분을 하며 너무나 대단한 지휘자라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나는 그저 막연하게 감동했다.

서울시향 홈페이지에 실린 정명훈 소개글


 
그의 실연을 다시 보게 된 것은 1998년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그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베토벤 3중협주곡, 그리고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을 연주했을 때였다. 유럽에 살면서 많은 연주를 봤지만 처음으로 음악이 연주자들에게서가 아니라 지휘자로부터 나오는 경이로운 현상을 경험했고, 그날 들었던 멘델스존 교향곡의 완성도 높은 해석과 아름다움은 그 이후 여태껏 단 한번도 다시 경험한 적이 없다. 
그후 2006년 서울시향에서 일하게 된 후에 여러 연주회를 통해 나는 지휘자 정명훈의 세계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유럽 투어를 위해 내 작품을 놓고 같이 작업을 했던 것이 그가 지휘자로서 어떤 차원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음악가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 자신이 얼마만큼 음악적 역량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면 일반 청중들은 그저 잘친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더 자세하게 평가할 수 있고, 그 곡을 직접 쳐본 사람들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지 같이 자기 영역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따로 있다.

나는 이번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정명훈의 영상과 음반을 집중적으로 듣고 공부했다. 물론 그가 어떤 역량을 가진 지휘자라는 것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좀 더 그의 세계에 다가가 여태껏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더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평생 음악을 해온 나도 그의 진가를 알기 위해 이렇게 먼 길을 오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같이 일하니까 아주 친할 것이라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에 같은 기간 동안 체류하는 것도 드물고, 그렇다 하더라도 자주 얼굴을 보는 적이 없다.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는 사이라 할 수 있다. 만나서 대화를 해본 것도 손꼽을 정도이고 전화통화를 한 적도 딱 한번 밖에 없다. 이 글에 들어있는 정명훈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지한 것들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극도로 비판적이며 까칠하다. 외적인 잣대가 아니라 내 귀로 판단하며, 아무거나 보고 감동하지 않는다.
나에게 지휘자 정명훈은, 그가 베를린 필과 뉴욕 필의 상임이 아니라도, 굳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객원지휘자가 아니고 콘세르트헤바우와 내한 공연을 안한다 하더라도 세계 최정상급의 지휘자이다. (그런 사람이 게다가 한국사람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는 예전부터 국제적 명성이 있었고 근래 몇년동안 더욱 부상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가 국내에서, 국외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친분이 있는 많은 젊은 세대 지휘자들(이들도 엄청나게 커리어를 쌓는 사람들이다)이 정명훈에 대해 경탄하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지휘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왜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내릴까?
한국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지 100여년 동안 국제적 무대에서 활동하는 굵직한 음악인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그들이 몇 명인지 열 손가락으로 꼽아보자. 그리고 그 중에 지휘자가 몇 명인지, 그런 지휘자가 몇 년에 한 명씩 배출되었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작곡가로서 시간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내 사후에 내 작품이 좋은 것이면 살아남을 것이고 아니면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지휘자는 살아있을 때 지휘를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곡가 진은숙보다 지휘자 정명훈이 지금 대한민국에 더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그를 포기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아르스 노바

나는 서울시향에서 상임작곡가로 있으며 아르스 노바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연주회 자체는 나의 활동 중 표면에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고 더 본질적인 것은 젊은 작곡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마스터클래스이다.
마스터클래스에서는 매번 약 20명 정도의 선발된 학생들이 개인레슨을 받을 수 있고, 그 중에 선발된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서울시향의 리허설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그렇게 몇년간 공부한 학생들 중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은 작품위촉을 받아 신작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더 나아가서 나는 이 학생들이 다른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가 되는 한 이들을 국내, 국외의 유수 앙상블과 페스티벌에 소개하고 있다. 작년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4명의 학생이 신작을 발표했고, 올해 9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글랑슈푸렌 음악제에서도 3명의 학생이 위촉작품을 초연하게 됐다. 약 2주전 파리에서 있었던 앙상블 앵태르콩탕포랭의 연주회에서 작품 초연의 기회를 가졌던 김택수도 서울시향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배출된 작곡가이다. 이런 기회들은 이 학생들이 그 해당국가에서 아무리 오래 유학을 한다하더라도 얻기 힘든 기회들이다.

나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동안 항상 가졌던 의문이 있었다. 소위 선진국 출신들은 자국에서 공부하고 정착해 활동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은 대학 졸업 후 의무적으로 유학을 나가고, 그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고달픈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다수에게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들어오기 두려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직접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창작계의 외국유학 의존도를 낮추고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국내에서 그들이 외국에서 얻지 못하는 기회를 제공해 유능한 인재를 키우고, 그들로 하여금 한국을 발판으로 해 국제적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연주계에서는 벌써 소위 ‘국내파’ 연주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창작계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젊은 작곡가가 독일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가 10년, 15년 공부한 후 어렵게 하늘의 별을 따는 것같이 앙상블 모데른이나 앵테르콩탕포랭에서 연주되는 것과, 국내에서만 공부한 사람이 유학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 앙상블에서 연주되는 것으로 자기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에서 해주는 작품 리허설도 마찬가지이다. 베를린이나 파리에서 아무리 오래 유학을 해도 젊은 한국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나 불란서 국립 오케스트라를 통해 들어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서울시향이 그들의 작품을 연주해 들려준다. (단원들이 쉬는 날에도 이 리허설을 위해 일부러 나오기도 한다.) 이것이 젊은 작곡가들에게 얼마나 큰 자부심을 선사하느냐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생각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이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부러워하던 것들과 동경했던 것들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남의 작품을 연주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내 음악이 설 땅도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활동이 내 개인의 활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서울시향과 서울시의 활동이다.
외국에 있는 학생들이 마스터클래스에 신청하면 외국에서 레슨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인천공항에 가는 차 안에서, LA의 한 호텔 로비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한 카페에서, 파리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레슨을 해도, 내 개인 돈으로 작품 위촉을 해도, 이 모든 것이 내 개인의 활동이 아니고 서울시향과 서울시의 사업이라 생각한다. 

정명훈과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와 친분이 있는 지휘자 켄트 나가노 씨는 항상 나를 만나면 정명훈에게 자기 오케스트라인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와서 좀 지휘해달라 말하라고 부탁한다. 여러번 초청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한다. 영국의 한 일간지에선 얼마전 지휘자 정명훈은 왜 영국에 더 자주 안 오는가 하는 기사가 났었다. 그는 국제적으로 끊임없이 부상하고 있고 많은 곳에서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부른다고 해서 다 가지 않는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나도 국내외의 여러 곳에서 여러가지 제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활동은 철저하게 서울시향으로만 국한시키고 있다. 서울시향에서 하는 활동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갔다. 2006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간이 없어서 들어오는 작품 위촉을 거절하고, 첼로 협주곡의 초연도 2년이나 뒤로 미루어야 했다. 
지난번 투어 때 잠시 지휘자 정명훈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베를린 필을 비롯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면 물론 좋지만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잘하는 오케스트라보다는 자신이 키우면서 성장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에서 훨씬 더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서울시향 일 외에 런던에 있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현대음악 시리즈의 음악감독직을 맡고 있다. 모든 시스템이 너무 잘 갖추어져 있어 지루할 정도로 일하는 것이 쉽다.
정명훈 지휘자와 나는 외국에 있는 다른 오케스트라들을 위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서울시향보다 더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더 명성을 얻을 수도 있고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가 이렇게 서울시향에 매달리는 것일까? 
나는 ‘사명감’이라는 상투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이 단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사이언스 픽션에 나오는 무의미한 단어일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일한다 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서울시햐엥서 느끼는 성취감과 애정을 느낄 수 없을 것이고, 지난 7년간의 서울시향이 이루어온 발전과 음악적 성과는 세계 어디에서도 반복되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