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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진은숙이 본 '정명훈 논란'(1) -세계 음악계와 한국의 위상

진은숙씨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예술감독의 고액 연봉 논란이 일었지요. 서울시향에서 정명훈 예술감독과 함께 일해온 진씨가 이 논란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왔습니다. 세계 클래식계에서 정명훈 예술감독의 위상과 한국 음악인들의 위상, 서울시향의 현 상황 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시리즈로 올려놓습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나의 생각

진은숙


지난해 11월 18일 허환주 기자가 프레시안에 내놓은 기사를 기점으로 수 주 동안 계속된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나의 의견을 이 지면을 통해 표명하고자 한다. 사태가 많이 진정된 현재 이런 글은 시기적으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동안 일단 사태를 관조하겠다는 서울시향의 경영진의 결정을 존중해 이제야 발표하게 되었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첫 부분은 서울시향의 활동과 지휘자 정명훈, 그리고 나의 역할에 대해서이고 두 번째 부분은 논란이 지속된 기간 중 인터넷에서 접했던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해서이다. 
행정에 관한 것은 내 소관이 아니고, 문제를 제기한 글들에서의 잘못된 주장에 대한 반박은 벌써 좋은 글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지면에서는 생략한다.
이 글은 나의 아주 주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고 군데군데 한국말 표현이 부드럽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만남

나는 내 인생 절반 이상을 독일에 체류해오고 있다. 말하자면 해외동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한다. 나는 한국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사람을 이편 저편으로 가를 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 글에서 ‘우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든 한국 사람(이번 논란을 제기한 사람들까지)들을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을 떠난지 20여년만에 지휘자 정명훈의 제의로 서울시향에 영입되어 2006년부터 아르스 노바 시리즈를 책임지고 있다. 그 제의를 받아들인 첫번째 이유는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나의 존경심 때문이었다. (그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후 첫 내한 공연을 할 때 나는 리허설을 보기 위해 이리저리 쫓겨다니다 창문에 귀를 대고 잠깐 훔쳐들은 그의 피아노 소리를 마음에 담아가던 꼬마였다.)
 
두번째 이유는 서울시향이 법인화되어 여태껏 한국에는 없었던 시스템으로 새출발하는 단체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시향과 지휘자 정명훈의 결합은 더 바랄 것 없는 최상의 만남이라 생각한다. 정명훈이 아무리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이렇게 자기 자신의 음악적 비전을 투사할 만한 오케스트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울시향도 정명훈같은 지휘자가 한국에 없었다면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음악적 성과와 발전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작곡가 진은숙 프로필 (서울시향 홈페이지)


 
나는 내가 지금 현재 정명훈과 서울시향과 같은 시대에 살며, 그들의 음악적 성과를 지켜보며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엄청난 나의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예브게니 키신과 같은 세대에 태어나 그의 실연을 들을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1971년 별세한 스트라빈스키와 약 10년간 이 지구상에서 같은 공기를 숨쉬고 같은 달과 별을 바라보며 존재했다는 사실을 경이스럽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2006년 서울시향에 영입된 후 지금까지 7년간 나는 서울시향이 발전해가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봐왔다. 사실 일반청중들은 연주회라는 표면적 결과물만 보게 된다. 그 뒤에 숨겨진 지휘자, 연주자들, 그리고 스태프들의 노고와, 어떤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하나하나의 연주회가 청중들에게 선사되는지 알지 못한다. 더 나아가서 비단 연주회뿐만이 아니라 서울시향이라는 단체가 어떤 노고를 통해, 어떤 장애물을 헤치며 존재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서울시향 연주회만큼 공력과 애정이 응축되어 있는 연주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임지휘자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차치하고라도 단원들과 경영진의 숨은 노고도 만만치 않다. 
연주회 하나가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문제들과 위급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그런 것들에 경영진은 최고의 전문성으로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단원들은 엄청난 양의 곡을 공부해야 하고 빡빡한 리허설과 연주회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나는 실제로 아르스 노바 연주회 리허설 기간 중 연주자들이 스스로 자정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심지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연습하기 위해 집에 안 가고 연습실에서 취침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서울시향은 불과 7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성장했고 국제적 무대에서도 괄목할 만한 상대로 부상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적 성과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지만, 단순히 내 자신의 작품을 2006년에 연주했을 때와 2010년에 했을 때만 비교해봐도 서울시향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해오고 있는지 내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재단법인화 초기에는 어느 누구도 이런 속도로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서울시향의 이런 음악적 발전은 여기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최상의 산물이다. 앞으로 더 발전하고 견고해질 때까지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서울시향은 과도기를 겪고 있고, 언젠가는 모든 것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긴 역사를 가진 서양의 오케스트라같이 운영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 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고 행정에 무지한 채 하는 제안은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모든 것은 무너질 수 있다. 그 제안이 소위 ‘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애정어린 조언’으로 가장되어 있을 때 그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나는 서울시향과 지휘자 정명훈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한 식구이며, 내가 하는 일도 그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논란이 내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비난과 서울시향의 음악적 성과에 대한 폄하는 나를 향한 화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이번 논란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던 이유이다.

한국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지 100여년, 오케스트라가 생긴 지 50여년 동안 많은 음악적 사건들이 벌어졌다. 서울시향의 재단법인화와 지휘자 정명훈의 영입,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성장은 한국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열린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서울시향의 발전은 대한민국 안의 다른 문화단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실 나는 다른 오케스트라들이 서울시향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상임작곡가 제도와 현대음악 연주회를 시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 총체적인 현상은 국가 차원에서 문화의 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기여해, 정부에게 한국의 문화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정책적으로 더 많은 노력과 지원을 하게 할 것이다.
 
서울시향을 비롯해 국제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여러 개 생기고, 전통음악에도 더 많은 지원이 가고, 수준 있는 오페라 프로덕션이 쏟아져나오고,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는 영향력 있는 페스티벌이 열리고, 능력있는 한국 음악가들이 외국에서 표류하지 않고 국내에 정착해 활동하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나의 꿈이다.
그리고 서울시향이 게속 발전해 나간다면 이런 미래는 꼭 오리라 확신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 서울시향 투어와 DG계약

오래전 독일의 유력 주간지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대해 ‘이 개성없는 nobody가 취임하자마자 나는 벌써 코피 아난을 그리워하고 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당시 반 총장은 취임한지 얼마 안되었고 뭘 잘하지도 잘못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몇년전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탔을 때 독일 신문들은 상을 탄 다른 영화배우들의 화보로 장식되었지만 전도연의 사진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내가 보는 신문에는 누가 주연상을 받았다는 얘기도 언급되지 않았다.
베를린의 한 유명한 지휘자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투어 때 왜 중국과 일본에 가면서 한국은 안 들르느냐는 질문에 항상 "꼭 그래야 돼? (Muss es sein?)"하고 물었다 한다.
내가 2007년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초연했을 때 많은 신문들이 그 기사를 다뤘다. 뮌헨의 한 지방신문에 나온 기사의 제목은 ‘한국산 들토끼’.

나는 절대로 위의 에피소드를 통해 서양사람들이 우리를 인종적으로 차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도 내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겪는다라는 피해의식에 절어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지난 20-30년간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 살면서 아직도 이들에겐 우리의 존재가 너무 멀고 먼 곳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특히 음악계에서는 더하다. 바흐와 베토벤의 후손으로서 이방인의 실력을 서슴지않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음악계에도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있다. 성공도가 꼭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우리 출판사와 계약한 후 내가 미국인, 유럽인이나 유태인이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중국인, 일본인도 아니다) 나를 홍보하는 것이 많이 힘들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때 자국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 소위 선진국 출신 음악가들과 맨몸으로 맞서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가고 비슷하게 인정받으려면 5배, 10배로 더 노력하고 잘해야 한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에는 보너스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활동하는 한국의 음악가들은 다 순수하게 그들의 실력만을 통해 그 위치를 확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세계 음악계의 메커니즘을 지배하는 것은 각 나라의 문화의 힘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찬란한 문화예술의 전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인식하고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을 지원해 그들이 국제무대에 진출해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향이 국제적 무대에서 올리고 있는 음악적 성과는 국가 차원에서 꼭 주시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한 개인이 잘하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 느껴지지만, 한 오케스트라가 잘하는 것은 국가의 힘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2010년에 있었던 서울시향의 첫 유럽 투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베를린을 거치느냐 아니냐는 이슈를 놓고 내부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모든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너무 중요하고 또 동시에 두려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를린을 꼭 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명성있는 음악가들이 어떤 식으로 청중과 언론으로부터 매를 맞고 갔는지 봐왔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얘기하고 무엇을 평가할 때 철저하게 비판적이다. 듣기 좋은 수식어를 남발하지 않고, 쉽게 감동하지 않으며,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항상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아무리 유명한 대가일지라도 연주가 마음에 안 들면 야유가 쏟아진다.
피아니스트 랑랑에는 ‘당장 피아노 선생을 찾아 레슨 좀 받고와라’라는 선고가 내려지고, 다니엘 바렌보임에 대해서는 ‘그가 연주하는 포르티시모는 고통스럽다’라고 외친다. 작곡가 슈니트케의 오페라 초연 후에는 ‘당신은 이제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끝났으니 왕좌에서 내려오라’라는 평이 실렸다.

2010년 6월 2일 서울시향의 베를린 연주날 콘체르트하우스의 매표소 앞은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쉽게 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생각하고 온 많은 사람들이 ‘이게 웬 난리냐. 이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유명해?’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한다. 그날 연주회장은 베를린 음악계에서 일하는 중요인사들을 대거 포함한 청중들로 꽉 채워졌고, 그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낀 단원들은 어느 연주때보다도 더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꼈다 한다. 
베를린 청중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수준높은 연주를 듣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그래서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날 서울시향과 지휘자 정명훈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열정적인 연주는 단순히 수준높은 연주의 차원을 넘어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고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을 선사했다.
내가 잘 아는 한 음악계 관계자는 "서울시향은 까만 머리의 젊은 동양인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동양인 학생 비율이 많은 독일의 한 음대 학생 오케스트라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말 대단한 연주였다’ ‘믿을 수 없다’ ‘거의 마법과 같이 홀리는 힘이 있었다’라며 상기된 표정으로 경탄할 때, 악평을 쓰기로 유명한 한 평론가가 기립박수를 하는 것을 봤을 때, 내 동료 작곡가들이 ‘이런 오케스트라와 같이 일을 하니 얼마나 좋으냐’며 부러운 시선을 보낼 때 나는 유럽 생활 25년만에 처음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서울시향의 이런 음악적 성과는 201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독일 연주에서도 이어진다. 불과 2년동안만의 투어를 통해 서울시향은 유럽에서 국제적 오케스트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는 오케스트라로 부각되었고, 유럽음악계에 무시할 수 없는 경쟁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 투어뿐만 아니라 서울시향의 도이치그라모폰과의 계약도 유럽 음악계에서는 큰 이슈거리가 되고 있다. 음반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유명한 거장들조차도 주요 레이블에서 쫓겨나는 판국에 생긴 지 얼마 안되는 서울시향이 최초의 동양 오케스트라로서 5년이라는 장기간 계약을 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나는 실제로 독일에서 음악인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서울시향의 DG계약건을 언급하자마자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같이 싸늘해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유럽 내에서 어디를 가나 DG계약건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서울시향은 그들의 경탄과 부러움과 시기심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향이 국제적 무대에 서면 누구를 대변하는 것인가 생각해보자. 어느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대변하는가? 아니면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가?
7년이라는 짧은 역사 안에서 서울시향과 정명훈은 그들의 예술적 성과를 통해 이렇게 국제적인 무대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벌써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꼭 우리가 열심히 해서 서양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상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작곡가로서 많은 작품을 써왔다. 나는 내가 쓴 작품 중 어느 곡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예술적 성과에 나는 최고의 존경심을 보내고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나는 내 작품에 대해 악평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억지주장과 거짓논리로 이번 논란의 불씨를 던진 사람들의 이름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음악을 통해 경험한 그 잊을 수 없는 순간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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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