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집보다 더 중요한 것

이일훈 | 건축가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파고 제비는 진흙을 물어다 제집을 만든다. 까치는 잔가지를 얹어 둥지를 튼다. 딱따구리는 조각적, 제비는 소조(塑造)적, 까치는 결구하는 방법을 쓴다. 쪼고 붙이고 엮는 것은 다르지만 목적이 같은 새들의 집짓기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집 자리(장소·위치)를 정하는 감각이다. 새는 번식이 끝나면 미련 없이 둥지를 버리거나 떠난다. 새들에게 둥지란 소유 아닌 사용이 목적이라서 남을 의식해 꾸미거나 필요 없이 두세 채를 갖지 않는다. 인간의 건축적 관점과 매우 다르다.


누군가 매단 새집, 팔 뻗으면 닿는 높이에 바람이 불 때마다 불안하게 흔들리니 새들이 깃들일 턱이 없어라. 공원 숲에 새집 아닌 새집만 늘었더라. 조류보호 한다고 새집만을 다는 것은 새의 생리와 별 관계 없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다. 조류의 멸종이나 감소 원인은 둥지의 부족보다 서식환경 파괴와 먹이사슬의 붕괴가 더 크다. 새집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가 사는 방식을 살피는 것이거늘 인공둥지엔 ‘새집을 떼어가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더라. 사람의 집을 닮은 새집을 만들어 달면서 새의 습성보다 사람이 떼어가는 걱정을 먼저 하니, 오호라, 새만도 못한 인간이 참 많은 시절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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