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빽 없이 오는 봄

이일훈 | 건축가






비속어 ‘빽’은 필시 배경을 뜻하는 단어(background)에서 왔을 것이다. 출신 배경을 팔아 입지하고, 권력과 가깝게 지내며 행세하고, 의사결정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주변의 힘을 이용해 검은 이득을 취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벌을 면하고…, 좌우지간 부당하고 불순한 의도를 깔고 있는 빽만큼 이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말이 어디 있으랴. 예전엔 없는 사람들이 찾았는데 요즘엔 있는 사람들이 대놓고 끼리끼리 지키려 안달이니 빽의 얼굴도 점점 뻔뻔해지는 모양이더라. 빽과 빽이 공생·기생하는 빽의 전성시대, 가히 철면피를 넘어 ‘빽면피’의 세상이더라. 이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유빽무죄 무빽유죄’로 바뀔 날이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더라. 


불상에도 빽을 두른 것이 있으니 바로 광배(光背)다. 신비함을 상징하지만 광배가 없다고 그 위대한 깨달음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광배 없이도 종교·예술적 감흥을 전하는 불상이 얼마나 많은가.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빽이 많은 대통령이다. 주변의 빽을 물리치며 멀리해서 진정 스스로 빛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무빽무죄 유빽유죄’의 시대를 열어주길, 석불입상의 후광보다 더 빛나는 봄기운이 세상을 녹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