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흑돼지냐 백돼지냐

돼지 품종이 뭐가 있냐고 주변에 물었다. ‘한돈’(?)이라고 대꾸한다. 한돈은 국내 양돈업자가 만든 브랜드이지 품종은 아니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돼지 품종을 잘 모른다. 오죽하면 백돼지와 흑돼지로 나뉜다고 할까. 연간 8만여 마리 이상 출하되어 대표적인 제주 흑돼지조차 정확한 품종명이 아니다. 외래종 흑돼지의 대표격인 버크셔의 혈통이 섞여 있거나, 더러 재래종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다. 물론 우리가 아는 ‘백돼지’의 혈통도 포함되어 있다. 흑돼지는 털 빛깔을 말할 뿐, 혈통 안에는 여러 돼지의 유전자가 뒤섞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재래종을 고집하기도 그렇다. 고유 흑돼지는 사실상 씨가 말랐다. 빨리 자라지 않고 무게도 적게 나간다는 이유로 수입종에 밀려버린 것이다. 그저 무게로 따지는 게 아니라 고유종의 맛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혈통을 찾아 보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의 돼지 축산 강국인 스페인산 흑돼지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시중에 ‘이베리코 돼지’라고 써 놓은 고깃집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다. 이 돼지는 통째로 들어오지 않고 일부 부위만 수입된다. 품질이 뛰어나고 관리가 잘 된 돼지고기라 맛이 좋다. 스페인과 유럽에서는 인기가 적어서 싸게 팔리는 부위인 삼겹살과 목살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혈통 관리나 흑돼지 종에 대한 난맥을 겪고 있을 때 슬금슬금 외래의 명품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일반 돼지를 흑돼지와 대별해서 ‘백돼지’라고 부른다. 실은 하얗지 않다. 갈색이 섞인 분홍색 돼지에 가깝다. YLD 돼지가 그것이다. 요크셔(Y), 랜드레이스(L), 듀록(D)을 삼원교배하여 길렀다는 뜻이다. 각 돼지의 장점을 합쳐 놓은 방식이다. 병에 강하고 번식력이 좋으며, 성장이 빠른 데다가 고기 맛도 좋은 품종을 뒤섞어 놓았다. 그러나 이런 장점을 쏙쏙 뽑았을 뿐 최고의 고기 맛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 세 품종 중에서 고기 맛이 제일 좋기로 유명한 듀록 종을 단독 혈통으로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듀록은 돼지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고급 종으로 꼽힌다. 갈색을 띤 황금색으로 고기가 찰지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삼원교배종의 대세에는 한참 못 미쳐서 시중에서 구하기는 아주 어렵다. 역시 가격과 생산성이 문제인 것이다. 또 외래종이지만 고기 맛이 좋고 까만색의 털빛을 지니고 있어 친숙한 국내 흑돼지로 오해받기도 하는 버크셔도 있다. 이 종은 사실상 국내에서 생산되는 흑돼지 혈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반 돼지에 버크셔 피가 섞여 있는 셈이다. 순종 버크셔를 길러내는 곳도 있다. 그러나 대세에 밀리고, 특히 가격이 비싸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우리는 삼겹살만 지나치게 선호하는 것뿐 아니라 돼지 품종이 단순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다채로운 품종이 시중에 깔려서 골라 먹을 수 있으면 좋을 일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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