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양평부추축제

사람들은 내게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법을 묻곤 한다. 그곳에서 살아봤으니 특이한 여행법을 추천해달라는 거다. 내 답은 거의 비슷하다. 로마, 피렌체, 밀라노와 베네치아 말고 작은 도시를 가보라고 권한다. 소박한 이탈리아의 삶을 볼 수 있으니까.      

   

또 하나는 사그라(sagra)에 참여해보라고 한다. 사그라는 작은 축제를 의미하는데, 대개 음식을 주제로 연다. 우리로 치면 면 단위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치른다. 이탈리아도 지방의 노령화, 젊은 인구 부족 현상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런 작은 축제를 열면서 여전히 마을의 과거와 미래를 이으려는 노력을 한다.   

 

 

개구리(물론 식용이다) 축제나 통돼지구이처럼 흥미로운 주제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것도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양파나 파, 고추, 가지 같은 것이 주제가 된다. 축제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갔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 그저 밤을 까서 케이크를 굽거나, 콩으로 수프를 만들고, 거친 옥수수로 죽을 끓이고 동네에서 나온 와인이나 두어 잔씩 돌린다. 그래도 행사는 흥겹고, 신난다. 번듯하고 멋진 축제는 아니지만 각자 마을에서 잘하는 것, 많이 생산되는 것, 맛난 것을 내놓고 같이 즐기기 때문이다. 소박한 축제인데도 은근히 관광객이 많이 온다.      

 

치즈 축제가 많은데, 치즈란 우리의 장과 같아서 손맛, 지역의 조건에 의해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굳이 이걸 맛보겠다고 멀리서 사람들이 모인다.     

 

사그라를 하는 건, 사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된 노동과 평범한 일상을 사는 동네 사람들이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이다. 화려하고 잘사는 동네뿐 아니라 변방의 소읍에서도 떳떳하게 자신의 존재를 말하는 무대다. 그참에 지역을 떠난 사람들도 돌아와 반가운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양동면 양평부추축제’라는 작은 포스터를 봤다. 양동면이라는 지명도 초문이고 축제 주제도 그랬다. 하나 오히려 번듯하고 폼 나는 유명 축제가 아니어서 눈길이 갔다. 큰 예산이 투입되고, 어마어마한 홍보를 하는, 지자체 수장의 선거운동 비슷한 관제 축제가 좀 많은가. 외부 기획사에 큰돈 주고 행사를 맡기고, 정작 주민들은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그런 축제 말이다. 축제의 주체는 관도, 관광객도 아니다. 자발적인 주민이 주인이다. ‘겨우’ 부추 축제라니. 이런 소박함에 절로 흐뭇했다. 양동면은 알고 보니 양평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다. 인구가 고작 4500여명에 그나마 대부분 ‘초’노인들이다. 그런데도 작년에 부추 농가가 똘똘 뭉쳐 첫 번째 축제를 치러냈다. 그 흔한 부추로 말이다.      

 

마치 옛날 추수 뒤 잔치처럼, 깃발 들고 노래 부르면서 흥겨웠다. 농촌은 언젠가부터 대책 없는 ‘미래’로 치부됐다. 노인들만 남아서 그들 이후의 사정은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공허한 슬로건만 떠들고 있다. 노인들이, 부추 심는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다시 축제를 연다. 마음 한구석이 싸해진다. 내일 아침 10시에 양동역 앞에서 개막해서 일요일 저녁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부추전도 부쳐 먹고, 올 때 싱싱한 부추 한 상자 사서 돌아오면 좋을 여정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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