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17) 공병호 - 위기 때 흔들린 마음

공병호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경향신문DB

큰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늘 준비했고, 늘 위험을 감수했고, 늘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따금 ‘불가피했지만 그건 실수야’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건이 있다. 

40대를 전후해 연구소에서 사업을 위해 전직을 했지만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험을 했다. 

더 솔직하자면 실상은 실패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위기에 처하게 됐다. 2년 정도의 참담한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과제를 앞에 두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경험할 즈음이다.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던 시기였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난 다음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10년 이상의 교분을 가져왔던 외국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경험 있는 분들은 이해하겠지만 전직과 현직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일단 현직을 떠나면 그동안 가져왔던 관계망이 상당히 허물어진다. 형, 아우로 부르며 지내던 관계란 것도 결국 이해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사실을 사람들이 깨우칠 때는 주로 현직을 유쾌하지 않게 떠날 때다. 대부분 사람들이 무관심했지만 그 외국인 친구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가 가진 인맥을 동원해서 특정 대학에 6개월 정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고, 얼마간의 생활비를 보조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줬다.


그렇게 예정대로 진행했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초청방문 건이 진행되면서 초청 측과 계약조건을 두고 서로의 기대가 조금씩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차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내가 해외에서 머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바깥에 나가 머리를 식힌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 시작하는 일은 여기든 거기든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부양해야 할 가족들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추진되던 중에 생긴 문제라서 내 책임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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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스스로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SOS’를 요청한 것이 실책이었다.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 임하고서야 비로소 체득하게 되는 지식이다. 아무튼 나는 외국을 방문하는 것을 거절하게 되었다. 이후에 그 친구가 그를 도왔던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가 얼마나 곤경에 처했는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일이 있고 3~4년이 지난 다음 우리는 다시 만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게 한 번 흠이 나면 좀처럼 복원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과거에 어떻게 해왔는지에 관계없이 말이다. 

나는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당혹스러운 순간이 왔을 때 더욱 더 신중하고 냉철하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떠올리곤 한다. 혼란스러움이 닥쳤을 때는 일단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고 난 다음에 외부와의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가능한 한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만에 하나 실수를 했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교정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되었다. 후회스럽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신중함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