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18) 김선수 - 왜 그렇게 어울리지 못했나

김선수 | 민변 회장
 

내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까지 살았던 고향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포장도로도 없어 차가 들어올 수도 없었다. 학교에 도서관도 없어서 읽을 책도 거의 없었다. 6학년 여름방학 때 나 혼자 의정부 작은 집으로 나왔다. 중학교 1학년 6월쯤 부모님이 고향 살림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나도 서울로 전학했다.

나는 도회지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이곳 아이들의 생활은 나와는 너무 멀게만 느껴져 같이 어울릴 수가 없었다. 맘에 맞는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교회에도 나가봤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옆자리의 짝과 1년간 한마디도 못했다. 짝도 나와 성격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당시 나는 사회에 적응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출가(出家)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으나, 방법도 잘 모르겠고 용기도 없어서 그냥 살았다. 문학적 소질도 없고, 운동도 잘하지 못했으며,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적 재주는 더욱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책이 없어서, 그 이후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다양한 교양서적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교 공부밖에 없었다.

고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끝까지 나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셔서 그 시절을 견디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한문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대학에 들어가면 서클 활동을 반드시 하라고 권고했다. 대학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학생편람에서 어떤 서클이 있는지 찾아보고 나에게 맞을 것으로 보이는 ‘고전연구회’란 서클에 들어갔다.

그 서클은 동양고전, 서양고전, 사회과학 파트로 구분되어 그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나는 동양고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동양고전 파트를 중심으로 해서 다른 파트에도 참여했다. 동양고전 파트에서는 선배가 중심이 되어 <맹자>를 강연하고, <논어> <노자> <열자> 등을 읽었다. 서양철학 파트나 사회과학 파트에도 시간 있을 때마다 참석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어찌 그리도 말을 잘하던지 주눅이 들었다. 나는 책을 읽고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한마디 끼어들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기회 있을 때마다 모임에 참여했다. 동기들 중에는 사정이 나와 비슷해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도 있었다. 책을 통해 나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도 있었다. <피억압자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을 당시 번역본이 없어 못하는 영어로 읽었는데, 내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식에 혼란을 겪는 원인을 밝혀주는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대학생 초기를 같이한 동료들과 그때 같이 읽었던 책이 평생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남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은 더욱 못하고, 순간적인 판단력이나 임기응변의 재주도 없다. 다만 모임에서는 ‘쪽수’를 채워주는 역할을 충실히 했고, 나에게 부여된 일을 할 때는 전력을 기울여 몰두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었는지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기도 했고, 또 일정한 역할이 나에게 떨어지기도 했다. 학습능력이 둔한 나로서는 벅찬 역할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사회에 적응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내가 변호사를 하면서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재판이 법정에서의 말보다는 글로 판사를 설득하는 구조로 진행되어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분야에 집중했기에 내가 나서서 영업을 하지 않아도 사건을 맡을 수 있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에 참여하고 거기서 쪽수 채우는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나의 둔감한 반응으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는 사람은 없는지 늘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