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19) 현오석 - 아이들 교육 일관성 있었나

경향신문DB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꾸지람을 들으며 자라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가정과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이러한 행동패턴 속에서 교육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성년이 되어 그런 대로 자기 앞가림을 한다고 생각되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나의 이러한 자녀 지도방법이 과연 옳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따르고 지시대로 행동하면 칭찬해주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잔소리를 하는 일이 되풀이되었지만 별로 의식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아이들은 혹시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아이’를 원하니 ‘만일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 같은 것은 필요 없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시켜 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행동을 평가해 칭찬과 꾸지람의 이분적 태도를 보여주면 아이들을 칭찬받을 수 있는 쪽으로 일방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 부모가 조종하는 인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칭찬을 받으면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아이가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칭찬 그 자체가 행동의 목표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크고 길게 보았을 때 우리 아이들의 이러한 행태가 남에 대한 배려보다는 경쟁을 더 의식하고 사는 데 길들여진 게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게 되는 것은 나만의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나 자신 스스로 후회할 때가 있다. 일관성있게 좀 더 가치있는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했더라면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일을 더 잘 찾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아이에게 “네가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고 하다가도 야단을 치면서 다른 태도를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이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했지만 감성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대응을 보여,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근본적인 회의감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가 나를 대신해 내가 원했던 일을 하도록 교육시키면서 만족을 얻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모의 대리만족 투사가 되고, 부모들은 이 대리 전투요원을 칭찬하고 야단치면서 승리하면 환호하고 패배하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의 신뢰관계 구축이다. 신뢰관계는 청년기뿐만 아니라 유아기부터 전 생애에 걸쳐 중요하다. 신뢰가 있으면 부모가 야단을 쳐도 무턱대고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학자의 연구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아이의 인생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위치를 결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또 이러한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위압적으로 강요하거나 저자세로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만 하는 자세로 이해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사랑이란 준비없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깃든 행동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이 깃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