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30) 정경화 - 아들과의 연주 거절

정경화 | 바이올리니스트

경향신문 DB

올해 6월 어머니를 뉴욕 퀸스 묘역에 있는 아버지 옆에 모시면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첫째아들 재곤이는 외할머니를 위해 나의 줄리아드 음악학교 제자들과 함께 피아노 트리오를 준비했다. 재곤이가 어머니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재곤이는 음악에 특별한 재주를 타고났다. 음악성이 뛰어나서 어려서부터 재곤이가 내는 피아노 소리는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우리가 그랬듯이 재곤이의 타고난 재주도 어머니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궁리를 하셨던 모양이다.

2003년 3월 나의 55세 생일을 맞아 어머니, 큰 언니(명소)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을 잘 지내고 마지막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재곤이의 피아노 반주로 나의 독주회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와 비슷한 일이 예전에도 있었다.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 입상한 직후였다. 그때는 프로페셔널 칠드런스 스쿨을 졸업한 직후이기도 했는데, 13살부터 풀 스칼러십(전액 장학금)으로 교육시켜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학교에 자선음악회 연주회 개최를 제안했다. 학교에서도 아주 반가워했다. 어머니는 피아노 반주를 동생 명훈이에게 맡기자고 하셨다. 명훈이가 15살이었고, 시애틀에서 피아노보다는 운동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여담이지만 명훈이는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다. 못하는 운동이 없었고, 농구와 미식축구는 학교 대표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콩쿠르에 입상한 직후였기에 연주회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할 때였다.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명훈이의 관심을 피아노로 돌려놓으시려는 어머니의 뜻을 외면할 수 없었다. 명훈이를 당장 뉴욕으로 불렀다. 운동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꼬맹이를 붙들고 하루 10시간씩 연습했다. 커리어를 막 시작한 때였기에 잔뜩 긴장한 탓도 있어서 연습시간은 그야말로 살벌했다. 한 음만 틀려도 명훈이를 쥐 잡듯이 몰아붙였다. 마침내 공연 날이 되었고 연주가 끝났다. 깜짝 놀랄 만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신기해할 만은 했던 것 같다. 나이 어린 동양인 남매가 그럴듯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훈이는 다시 피아노로 돌아왔다. 그리고 1974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뒤 바로 지휘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DB

이게 바로 우리의 어머니였다.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으셨지만, 늘 적절할 때 계기를 만들어주시고 자식 스스로가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셨다.
재곤이에게 피아노 반주를 맡겨보자는 말씀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훈이는 동생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지만, 재곤이는 아들이다. 도저히 명훈이에게 했던 것처럼 재곤이를 다잡을 자신이 없었다. 또 제 스스로 선택한다면 말리지는 못하겠지만, 연습에 연습, 또 연습이 생활인 그 어려운 인생으로 재곤이를 유도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얼마 전에 줄리아드 동기인 엠마누엘 액스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액스는 그날 대화 중에 아이들이 음악을 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리아드 피아노과에 진학했던 재곤이는 한 학기를 마치고서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곤 바로 조지타운대학으로 옮겼고, 지금은 뉴욕 시티그룹에 다니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장가도 갔다. 재곤이가 손에 땀이 너무 많아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노이로제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전에 두 번 정도 “저는 손에 땀이 너무 많아요”라고 한 적이 있긴 했는데, 그게 피아노 연주를 더 이상 할 수 없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Visionary mother of love and faith(방향을 제시해주신, 사랑과 신앙의 어머니)”라는 묘비명이 새겨진 어머니 앞에서 재곤이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누구보다 음악성이 깊은 아이이기에 몇 소절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찡했다.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다면 재곤이가 그 어려운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고 있을까? 어머니가 몇 번이고 되씹고 제안하셨을 재곤이와의 연주를 거절했던 게 불현듯 후회스러워졌다. 그러나 활기차게 사회생활을 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한 게 잘한 일이라고 도리질을 치게 된다. 이게 내 인생의 후회되는 한 가지의 일인지, 잘한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