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28) 윤후명 - 이별 연습

“어떡하니….”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에 내 귀는 먹먹해지고 가슴은 막막해진다. 현실적으로 아무런 방법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닥쳐오는 마지막 순간에 대한 속수무책의 말. 근본적인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말하자면 삶과 죽음의 ‘어떡하니’.

“어떡하니….”

나를 들으라고 하는 말일까. 그러나 나는 그 얼굴을 마주볼 수 없었다. 그 말은 후회의 뜻하고도 거리가 멀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야만 후회는 성립한다.

내 젊은날의 노트에 써놓은 ‘후회는 없다’. 무슨 신파처럼 읽히는 그 문장을 나는 되뇌면서 여기에 이르렀다.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나중에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정말 그러할 것인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후회는 없다’는 말은 내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주술 같은 것이기도 했다. 젊음은 그렇게 불안한 실존주의였다.

젊은날 무엇인가 고백을 하고 나서의 후회는 허탈과 함께 밤새도록 나를 괴롭히곤 했다. 술 탓에 저지른 실수로 ‘후회막급’을 외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젊음은 후회를 먹고 자라는 독초 같기만 했다. 그러니까 실수와 후회는 삶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후회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말은 실수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실수를 하고서도 ‘아차,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는 게 아니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것이 그냥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나의 함량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것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야말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인과응보였다. 아무리 순간적인 부주의라고 할지라도 결국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언제나 모종의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평생 내 마음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는 선을 긋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병원에서 ‘어떡하니…’와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무슨 방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즉, 생명의 연장이야 어렵다 하더라도 그 물음의 답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허사였다. 이제 와서 내 불효를 후회한다 한들 무엇한단 말인가. 어머니와 나 사이의 선은 더욱 확실히 그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이 이별, 이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누구에게나 닥칠 마지막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은 있을 수 없다. ‘태어남도 죽음도 다 헛된 것’이라고 마음을 다그쳐먹어도 소용이 없다. 모든 후회를 공부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되뇐다. 공부란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일 뿐. 열심히 산다는 것은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며칠 뒤 재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나는 경포대의 파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떡하니…’의 물음을 밀려오는 파도에 던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 어찌어찌 살아날 수 있었기에 살아온 삶. 나는 이제야말로 ‘어떡하니…’의 물음을 내게 던져야 한다. 공부가 부족해서 미루어둔 후회를 생각해야 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나를 닦는 것만이 나를 궁극적인 물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기에… 후회 없는 이별을 연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