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 소설가
한반도 남단 다도해 지방의 섬에서 나고 자란 나는 먼 바다, 태평양 대서양 등의 해양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의 3년 동안 나는 아버지 밑에서 김(海苔)양식을 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 어린 시절에 내 고향 덕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신비한 세계였다. 바다 속의 섬에서 안주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세상에서 갇혀 사는 것이고, 그 섬을 벗어나 육지로 나가는 것은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섬에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가 나를 육지의 학교에 보낸 것은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시를 쓰고 싶어 하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원양어선을 타러 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바다 모험과 문학적인 경험과 취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따라가지 않았다. 그 친구가 선택한 바다가 바람직한 큰 세상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쨌든 그 친구는 원양어선 선원을 거쳐 상선의 선장이 되었고, 5대양을 누비고 다녔다. 그 친구는 이 항구 저 항구로 옮겨 다니다가 어느 항구에서 오래 머물렀을 때는 그곳에서 편지와 선물을 보내곤 했다.
광주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소설을 쓰며 살았던 나는 그 친구가 한없이 그립고 부러웠다. 모든 것을 걷어치우고 나도 원양어선을 타러 가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삼십대 전후에 내가 쓴 소설들은 고향 바다와 어촌 마을을 소재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어촌 사람들의 순박하면서도 애잔한 삶과 바다에서 길들여진 야성적인 삶과 거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둠의 세계에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연근해일지라도 바다는 단순한 서정적인 모습이 아니고 거친 서사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바다는 어촌 사람들의 아픈 삶의 현장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마녀적인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연근해의 생활을 통해 나는, 인간이 바다 앞에서 연약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바다에 저항을 하며 비나리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이념 다툼과 한국전쟁을 거쳐 온 고향바다와 어촌 사람들의 슬픈 음화 같은 삶을 소설로 형상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멜빌의 <백경>을 읽었다. 그 뒤로는 먼 바다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과 두려움이 나를 안달하게 하고 고민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미 안주한 삶으로부터의 일탈에 대한 두려움과 그 먼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그쪽으로 뛰어들지 못하게 했다.
나는 바다와 관계가 깊은 어촌 소설들을 쓰기 위하여 고향과 바다에 대한 공부를 지속적으로 했다. 민속과 무속과 역사와 철학과 신화에 대한 공부도 했다. 그 결과 내 소설은 나름대로의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느껴지면서 나는 삶에 안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구러 나이 50을 훌쩍 넘겨버렸다. 다 뿌리치고 훌쩍 원양으로 한 번 나아가 보는 것인데, … 너무 늦었고, 나는 원양에 대한 모험을 포기했다.
칠십이 넘어선 나는 지금 생각한다. 만일 내가 원양어선의 선원이 되거나 선장이 되어 바다에서 생활했다면 나의 인생, 나의 소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이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소설을 쓰며 살아온 내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먼 바다와 그 바다에서의 생활을 소설 공간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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