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25) 정이만 - 어릴 적 어떤 거짓말

ㆍ정이만 한화63시티 대표

결혼한다고 인사 오는 직원들을 만나면 나는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얘기해주곤 한다. 그 중 하나가 배우자의 어릴 적 얘기를 많이 들어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어릴 적에 형성된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어릴 적에 어떻게 살았고 받은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처가 지금의 상황이나 성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아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설령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이해 못하고 상대방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격하게 싸움이 전개되기 일쑤이다.

나는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는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미술시간에 소파 방정환 선생의 초상화를 그렸다. 담임선생님은 내 그림이 좋다며 교실 벽에 붙여놓았다. 그러고는 어려운 형편에도 공부 잘하고, 그림까지 잘 그린다고 나를 칭찬했다. 나는 점점 더 우쭐대는 기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의 칭찬이 길어질수록 그 으쓱하는 기분도 커갔다.

담임선생님은 칭찬거리를 찾으시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하모니카를 불지 아느냐고. 마침 어머니가 사준 중고 하모니카를 갖고 간단한 노래 정도는 연습을 했는지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하모니카까지 잘 부는 학생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트레몰로 연주법도 아느냐고. 트레몰로 연주법? 전혀 생소한 연주법이다. 아주 나중에 알았는데 혀의 움직임으로 물결 소리, 호각 소리, 만돌린 소리 등 미묘하며 다양한 소리를 내는 연주기법이었다.

하모니카의 초보 단계인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어야 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의 계속된 칭찬으로 한껏 고무된 탓에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을 한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이튿날 하모니카를 가져와 연주를 해보라고 했다. 순간 당황했다. 하모니카가 오래 돼 소리가 잘 안난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당신의 하모니카를 갖고 올 테니 불어보라고 했다. 순식간에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되었다. 밥맛도 없었다. 잠도 안 왔다. 밤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우쭐한 기분에 거짓말을 한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결과를 만들지 몰랐다. 학교를 결석할 핑계거리를 찾았으나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학교엘 갔다. 식은땀이 흘렀다. 마침내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그러나 그 손에는 하모니카가 없었다. 그리고 잊어버리셨는지 하모니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갔다가 간신히 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우선 나는 분수를 지키며 살 것을 결심했다. 분수에서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순간 반드시 불행한 일이 터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로 우쭐하는 생각에서 하는 판단은 실수가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는 흘려버리고 내 귀에 쓴 말은 새겨듣게 되었다. 세 번째로 나 자신을 늘 성찰하며 성숙된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성경 말씀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고 바른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매일 쓰는 일기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평생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네 번째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가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최고경영자(CEO)는 늘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희생하고, 스스로를 낮춰야 조직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비웃음을 사지 않는다. 탈무드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