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32) 이영탁 - 어디서 고향을 찾을까

이영탁 | 세계미래포럼 회장

해마다 11월 중·하순이 되면 시제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가슴이 무거웠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이 사라질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20여가구가 모여 오순도순 살았는데 지금은 한 집밖에 없다고 한다. 그 집도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그렇게 해서 고향마을이 없어지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리운 것이 많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리움이 더해지는 것 같다. 철없이 보낸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도 그렇고, 어렵게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가 그립다. 돌아가신 부모님, 조부모님들은 더더욱 그리울 뿐이다. 이분들도 지금 동네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어떻게 해서든 마을만은 살려야 한다고 금방이라도 나타나실 것 같은 느낌이다.

시제는 6촌 형님네와 함께 지낸다. 한동안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두 팀으로 나누어서 지냈다. 나는 주로 조부모님 산소가 있는 쪽을 맡았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 증조부모님 산소의 위치를 잘 몰랐다. 그런데 형님 한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 자칫 하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증조부모님 산소에다 표석을 부랴부랴 설치하였다. 이제는 다른 형님 한 분이 안 계셔도 산소 위치 파악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 점은 안심이다.

                                                                                     경향신문 DB

시제를 지내는 날은 나로서는 기분 좋게 출발한다. 우선 어릴 적 정들었던 고향을 찾는 날이기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그래서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옷차림도 대개 등산복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산소에서는 손자로서 받았던 갖가지 사랑을 회상하면서 자라고 있는 잡초를 한 포기라도 더 뽑아낸다.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할아버지, 저도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되고 나니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산소는 특히 전망이 좋아 명당이라고 한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는데 뒤로는 산이요, 앞으로는 들판이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높은 산들이 넓고 시원한 시야를 잘 만들어주고 있다. 묘소 봉우리가 크게 만들어져 있는데 잔디도 잘 자라 모양새를 한층 더하고 있다.

조부모님 산소는 잘 가꾸어져 있지만 증조부모님 산소는 그렇지 못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생전에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제대로 가토를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당시 ‘예’ 하고 대답은 쉽게 했지만 아직도 실천을 못하고 있어 송구스럽다. 해마다 이맘때쯤에는 내년 봄에 해야지 하고 미루다가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 봄에 좋은 날을 잡아 가토를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먹어 본다.

시제를 마치고 산을 넘어오는 길목에서의 감회가 깊었다. 전에 다니던 길은 아예 없어졌고 지금은 새로운 길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차로 다니니 편하기도 하고 시간도 적게 들지만 어디 옛날 정취가 나겠는가. 돌아가신 지 오래된 어머니께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 오기 전에 몇 번씩이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시던 그 추억의 고개도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 지금 다시 한번 그 길을 걷고 싶은데 이젠 길이 없어졌다지 않는가!

우리네 생활에서 고향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본디 고향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눈만 뜨면 생각나는 부모형제, 그리고 정다운 친구가 있는 곳이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고향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먹고살기 바쁘고 차비가 아까워, 가고 싶어도 자주 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고향이 그립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고향은 과거에 그리던 고향이 아니다. 부모형제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다. 산천도 변해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 가면 지금도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옛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어릴 적에 정들어 지금까지 아련하게 남아있는 소중한 것들을 모두 놓쳐버려 마음만 아련하다. 그래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옛 친구들이 요즘 들어 더 많이 생각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