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35) 이원종 - 장인의 보청기

이원종 | 전 충북지사

‘보청기’란 말만 들으면 아내와 나는 마음이 아프다. 지난 추석 때 성묘 차 들른 장인 내외분의 산소 앞에서 아내의 독백소리가 들려 왔다.
 
“아버지의 고장 난 보청기가 여전히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저희 5남매 길러 내느라 막막하고 힘드셨지요. 등록금 마련하느라 가슴 뜯으시던 엄마 모습도 제 가슴에 그대로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 계실 때에 자그마한 것 하나도 왜 제대로 못 해드렸는지, 왜 그리도 부모님께 인색했는지 후회뿐입니다.”

 
충북도지사 시절, 퇴근한 나를 잡고 아내가 말했다. “친정아버지 보청기가 고장이 났는지 무척 불편하다고 하시던데.” 그저 아내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그런가’ 하며 건성으로 넘겼다. 장인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홀로서기의 철저함이 몸에 밴 분이셨다. 결혼 초 친정에 들렀던 아내가 쓰레기통으로 쓰고자 빈 사과상자를 들고 나오다가 장인께 혼이 났다.

“친정 것에 손대지 마라, 모든 것은 너희 자력으로 살아가라.” 섭섭하고 야박했지만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새끼를 키우는 맹수의 철학임을 알았다.

 

경향신문 DB

연세가 지긋해진 장인은 우리 집에 오면 늘 만족해하셨다. 소주 몇 잔 하시면 천하를 얻은 듯 행복해하셨다. 도지사 공관 숲속을 거닐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년에 그다지 여유롭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 분이 아내에게 보청기 말씀을 하셨다. 단 한 번 어렵게 하셨던 그 말씀을 지나쳐 흘려버린 나의 무관심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친정 일로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아내 역시 어렵게 보청기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무덤 앞에서 눈물을 쏟는 아내 모습을 보며 장인께 죄를 짓고 아내에게도 못할 짓을 하게 된 것이 후회가 된다. 내색도 하지 않고 고장 난 것을 그대로 끼고 불편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코자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시간이라 했다. 그 시간을 어떤 것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의 내용이 결정될 것이다. 영원히 함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허무하게 떠나보내며 살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