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38) 박석무 -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역리

박석무 |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의 글 ‘매심재기(每心齋記)’에는 자신의 형님 정약전의 당호가 ‘매심재’인데, ‘매심’이란 마음 심(心)과 매(每)를 합한 글자가 ‘회(悔)’라는 글자여서 했던 일에 잘못이 발견되면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매일 마음을 점검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여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각오가 담긴 내용으로 설명하였다. 주자(朱子)도 ‘십회(十悔)’라는 글을 남겨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는 끝내 후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열거하여 가능한 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였다.

주자나 다산 같은 현인(賢人)들도 일마다 후회될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는데, 항차 우리네 같은 속인들이야 일마다 후회할 일이요, 행한 일마다 반성이 요구됨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만족한 일이 없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슴 깊이 후회되는 일이 특별하게 몇 가지가 있다. 다산학(茶山學)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분야가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가학(家學)의 덕택으로 사서(四書)의 공부는 대강 끝내서 한문을 해독하고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다산의 방대한 저서를 대강은 읽고 해석하는 수준에는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1950년대에 초등과 중학교를 마치고 1960년대 초에 고등학교를 마쳐 한문 공부나 한문학이 가장 천대를 받던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낸 탓으로 삼경(三經), 즉 시(詩)·서(書)·역(易)이나 예기(禮記)·춘추(春秋) 등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조부님은 세상을 뜨셨고, 풍상(風霜)을 겪은 바로 뒤인 1980년대 초 아버님마저 타계하셔서 공부를 물을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40대를 넘기고 바쁜 세월에 고경(古經)을 연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사서야 독학으로도 가능할 수 있지만, 고경이야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분야여서, 끝내 그런 공부를 놓치고 말았으니 얼마나 후회막급할 일인가. 동양철학의 핵심이론이 담긴 <주역(周易)>에 무지하고서야 어떤 공부가 가능하겠는가.

다산 정약용은 세상에 모를 분야는 <주역>이라고 말했다. 

또한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으로서는 주역공부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고서도, <주역사전(周易四箋)>이라는 거질의 주역연구서를 저술하여 ‘다산주역’을 완성해놓지 않았는가. 게으름과 방향감각의 부재로 주역공부를 놓친 점은 두고두고 가슴 아픈 일이다.

우주만물의 소장성쇠(消長盛衰)와 역사의 변혁원리가 내재된 역리(易理)를 알지 못하는 약점을 어떻게 보강할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움만 앞선다. 

6·25 전후에 초등학생, 4·19 전후에 고등학생, 6·3시대에 대학생으로 동양학이나 우리 학문을 천대하던 그런 풍토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우리의 약점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다산을 연구하고 공부하다가 고경의 깊은 이론에 대면하면 앞과 뒤를 몰라 헤매는 이런 심정을 누가 알아줄 것인지.

경향신문 DB



5·18 광주항쟁으로 투옥되어 출소한 해가 1982년이었다. 40대에 접어들어 그때라도 깊은 공부를 해보려고 마음을 다잡아 보았으나, 1984년 초 어느날 갑자기 70도 되지 않은 아버님이 세상을 뜨셔, 초서라도 배우려던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어린시절부터 초서를 읽고 직접 쓰실 수 있던 아버님께 초서를 제대로 배웠다면 이 부분의 약점도 많이 보강되었을 것인데, 그런 운도 없어서 아버님과의 사별은 초서를 못 배운 후회를 거듭하게 해주는 일의 하나다. 이름만 전통학문을 연구한다고 표방하면서 역리(易理)도 제대로 모르고 진초서 등을 명쾌하게 해독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녔으니, 이런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감당할 것인가. 다른 일에 바빠하느라 그런 공부를 제대로 할 기회가 없었으니 학문이 진보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세상과 시대를 탓하는 일도 변명에 불과하다. 의지가 굳고 참다운 노력을 기울였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는데, 시국 탓, 세상 탓, 시대 탓이나 하느라 보내버린 아까운 세월, 후회하면 뭐하며 탓하면 뭐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