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39) 이이화 - 끝내 못 쓴 역사소설

이이화 | 역사학자


나의 10대 시기는 고난에 찬 삶이었다. 밥 먹을 데도 잠 잘 곳도 없어서 고아원에 기탁했다. 한국전쟁 직후 고아원은 그야말로 도가니였다. 그곳에는 소매치기, 깡패, 거지 짓을 하던 아이들이 우글거렸다. 내가 가출한 동기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굴러다니는 책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내가 책을 들고 있으면 우락부락한 아이들이 와서 책을 빼앗아 내던졌다. 나는 허약해서 맞서 싸울 힘이 없었다. 몰래 숨어서 책을 읽었다. 참고서는 물론 ‘새벗’ 같은 잡지, 야한 소설 따위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어 여관 종업원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 무렵에는 독서경향이 조금 정리되어서 학교 도서관의 책을 빌리고 굴러 다니는 책을 주어서 틈만 나면 읽었는데 주로 세계 명작들이었다. 시로는 릴케나 롱펠로의 시집, 소설로는 <전쟁과 평화> <레미제라블> 등 명작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가 또 짬을 내서 시도 쓰고 수필도 써서 학교 교우지나 학생 잡지에 투고를 해서 발표를 했다. 학생 문단에 등장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문예창작과에서 문학공부를 했고 기회가 닿는 대로 여기저기에 습작을 발표했다. 이제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할 시기였지만 개인 생활이 어려워 중퇴하고 글쓰기를 미루고 있었다. 이 무렵 나는 문학 관련 글쓰기를 접고 역사공부에 몰두했다. 우리 역사는 너무나 처절하게 전개되었고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주권이 유린되고 남북분단 구조 아래 민족갈등이 유발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0대 후반, 한국사 공부에 뛰어들면서 문학 관련 글쓰기를 접었다. 한국사 관련의 글을 읽고 쓰고 발표하고 이어 저술을 냈다. 그런 속에서도 예전과는 뜸했지만 주목되는 시집이나 소설을 틈틈이 읽었다. 특히 역사소설 읽기를 즐겨했다. 나이가 들어 역사 대중화를 표방하면서 많은 저술을 냈다. 역사책을 쓰면서 늘 문학적 표현을 빌리려 했고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 책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태정태세…같은 왕의 이름을 나열하지 않았고 입시에 연대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면 나무랐다. 그 결과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게 독자를 감동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역사 소재의 글을 쓰고 싶어서 역사소설을 떠올렸다. 나는 젊을 때 홍명희의 역사소설인 <임꺽정>을 읽고 감동을 했고 조선시대의 역사 분위기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또 늦은 나이에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해방공간 또는 분단의 아픔을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이런 역사소설을 써서 한국 민중의 아픔이나 민족 고통을 그려보려고 자주 마음을 먹었다. 또 순수한 역사책으로는 모자라는 내용을 보충하려고도 했다. 언론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꿈을 말하기도 했다. 결심은 굳었을지 몰라도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영 뜻대로 이룰 수 없었다. 젊을 적의 문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역사 대중화에 더욱 기여하고 싶었지만 재능이 모자라고 늙어가면서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내가 비록 역사소설을 썼다할지라도 내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거나 독자들에게 호응을 받았을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후회는 남지만 그 꿈을 접어야 할 나이이다. 욕심이 너무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가끔 이 얘기를 들먹이는 후배들이나 독자들이 있지만 요즈음에는 손사래를 치면서 허풍이었다고 변명을 늘어 놓는다. 그저 남은 세월 동안 못다 쓴 <한국인권사>나 <한국여성사>를 마무리짓는 일에 힘을 쏟으려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학공부에 한동안 심취한 것을 두고 후회하지도 않았고 역사공부를 한 것을 두고도 잘못된 길이었다고 여긴 적이 없이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진지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운 것에 후회와 반성이 따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