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41) 서정진 - 구조조정 악역


40대 초반, 대우자동차에서 일할 때다. 1998년 10월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대우그룹은 곧바로 비상구로 내달렸다.

이듬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 한가운데 대우차가 있었고, 급기야 대규모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됐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채권단이 나서기 전에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경영을 잘못해서 배가 침몰했으니 경영진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다수 직원들을 생존시킨 상태에서 경영진이 먼저 경영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후임 경영자들이 회사를 추슬러 재기를 도모하는 쪽으로 가는 비상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반대의견을 갖고 있던 내가 조정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일을 맡게 됐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역할이었다. 한 번은 직원들, 그리고 직원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한 직원의 아내가 말했다. 

“힘들어도 참고 길을 가달라. 부디 구조조정을 잘 진행해서 회사를 살려달라. 우리 생각을 하지 말고 회사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달라. 대신 회사가 살아난 다음에는 해고된 직원들을 기억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나는 내부적으로 결정된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면회소 앞에서 멈춰섰다. 한 노조간부가 갓난아이를 안고서 아내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강성 노조원이었고, 회사로서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이 때문에 나에게도 그랬다. 나는 그를 노조원으로만 봤고 그렇게만 생각해왔는데 그 또한 다정다감한 아빠였고, 남편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어떻게든 대규모 구조조정만은 피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스럽게도 구조조정은 나중에 채권단이 진행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내가 만들었던 계획안은 전면 보류됐다.

내가 만들었던 안이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가졌던 마음의 짐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한때나마 구조조정을 생각했고, 그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가만히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때처럼 후회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경영자들이 진실로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한 상태에서 직원들에게 미안해하면서 대상자를 선정하고, 대상자에게 위로의 말을 진심으로 건넬 수 있는 안이었다면 한편으론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무를 맡았던 나조차도 이를 자신할 수는 없다. 
 

도법스님이 광화문 KT 앞에서 ‘정리해고 희생자 위로를 위한 법회’를 열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구조조정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직원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굳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먼저 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그 다음으로 간부, 직원 순이어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은 뒤로 물러나 있고 약한 사람들에게, 평소 눈엣가시처럼 느껴지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경영책임을 지고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그 당시 회사를 떠난 직원들과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바로 셀트리온이다. 우리는 망하지 않기 위해 일했다. 대우차에서 겪었던 아픈 경험들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기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익을 내서 회사를 생존시키는 것이다. 회사의 생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실제로 경험했고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생각하고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줌으로써 생계는 물론 회사에 다니는 자긍심을 갖게 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일하는 보람을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