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 시인
불현듯 소용돌이치며 감정이 솟구쳐 올라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은 순간이 지금이라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빗이 그 감정의 파도를 잘 빗겨내려 이내 고요해지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것을 사람들은 나이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나이 덕일 것이다. 내 어머니는 칠순이 가까워질 때까지 “마음은 청춘”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이 처음에는 힘이 있다가 차츰 말끝에 힘이 빠지고 있음을 알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나이를 되짚어 살아오면서 그것이 황당한 거짓말이라고 믿었던 나의 확신이 풀리고 “진실”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살아왔다고 해야 옳다. 나이만큼 마음이 늙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아프게 경험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마음과 나이의 거리가 또 하나의 아픔을 만들어내는 것을 견디는 일이 바로 나잇값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진폭이 큰 파도는 더 힘이 필요할 것이다. 감정과 감정,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진폭이 큰 파도처럼 대책없이 떨어져 내리며 부서졌던 세월이 나의 젊은 시절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런 폭풍 같은 감정을 놓치기라도 하면 시인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처럼 나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감정 때문에 나는 날 너무 고단하게 부려먹었다. 감정을 제왕처럼 모시면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외치면서 감정을 배반하면 날 배반하고 문학을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경향신문DB
내 인생에 후회가 있다면 남발한 내 감정이다.
나는 이익에 둔하다. 감정을 최우선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흘러가는 대로 두면 결국 남는 것이 없다. 피로와 고단함과 자책만 남는다. 한량없이 배고프고 초라한 것이 감정이다. 적당량의 감정은 에너지도 되지만 과하면 붕괴한다. 늘 우울한 낮과 밤, 늘 위태롭기만 했던 외로움은 감정이 자생시킨 쓸모없는 지병이었을 것이다.
속 빈 강정같이 본질도 알 수 없는 감정과 싸우던 시절이 내 젊은 날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만 좀 더 실체를 찾는 일에 쏟았더라면 나는 지금 더 많이 알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도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도 더 알고 있지는 않을까. 현실에서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평범한 진리를 좇으며 결국 결혼하고 아이낳는 섭리 안에서 말이다.
그 감정에 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극복하는 힘을 길렀다면 내 문학도 좀 더 생생한 호흡으로 살아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 문학도 인생도 그렇게 내가 모셨던 감정이라는 유령의 제왕 때문에 손실이 컸다고 나는 단정한다. 후회라는 낱말에 나는 서슴없이 손을 든다. 약지도 영악하지도 못해서 철철철 감정에 휘둘리는 그 모습, 그 나약하고 가파른 감정으로 덜컹거리는 그 여자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갈기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살아있다. 어머니의 푸념처럼 “마음은 청춘”에 나는 적극 동의하지만 그 성격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흔히 노후를 걱정하면서 건강과 경제력을 챙기지만 노후의 감정 관리도 노후준비에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감정은 불분명한 상처만 남고 소멸하지만 노후의 감정은 경험을 토대로 한 창의력의 생활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상실과 질병, 정서적 허기를 견디는 새로운 감정은 영적 힘의 의존이 필요하지 않을까. 절제의 깊은 미덕이 내 문학과 생활에 든든한 자산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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