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2) 안성기 - 악기 하나 다룰 줄 알았더라면

안성기 | 영화배우


배우로서 작품을 끝내고 나면 늘 만족감보다 아쉬움과 후회가 따릅니다. 

이 때의 후회와 다짐은 다음 작품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요. 그럼에도 미흡함을 깨치고 뉘우치고 마음을 다잡는 과정은 작품을 마칠 때마다 반복됩니다. 주위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도 당사자의 눈에는 부족하거나 넘쳐보이는 게 어떤 작품에서든 있게 마련이거든요.

성인으로 출연한 장편 극영화가 <병사와 아가씨들>(1977)부터 개봉을 앞둔 <페이스 메이커>까지 모두 일흔여덟 편입니다. 간혹 예전 출연작을 다시 볼 때에 ‘눈빛을 조금만 더 누그러뜨렸더라면…’ 등 모르고 있다가 새삼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출연작 중 영화 외적으로 후회막급인 작품은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입니다. 피아노 등 악기 연주 실력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영화에서 제가 맡은 대통령은 인사동 거리에서 시민과 관광객을 상대로 외국곡 ‘러브 이즈 어 매니 스플렌디드 싱’(Love is a many splendid thing)을 피아노로 연주합니다. 대통령의 인간적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꼭 필요한 장면이지요.

저는 이 장면 촬영을 위해 3개월 동안 연습을 했습니다. 물론 피아니스트의 개인지도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악보를 볼 줄 몰랐습니다. 촬영에 들어갈 때까지 남아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고요. 부득불 손으로 익혀야 했습니다. 워낙 기본기가 없는 데다 원시적으로 익혀 하루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틀리기 일쑤였습니다. ‘틀리지 말아야지, 틀리면 안 되는데…’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매번 한 곡만 연습하는 게 솔직히 지겹기도 했습니다. 재미가 없고 흥미를 못 느끼다보니 실력은 좀체 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여간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닙니다.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수준급 아마추어일 정도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랬다면 그 악기로 대체할 수 있고 그만큼 다른 데 더욱 열중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겠느냐고. 악기라고는 <라디오 스타>(2007)에서 잠깐 보였듯 기타를 조금 칠 줄 아는 게 고작이었거든요.

아무튼 촬영은 그런 대로 만족한 가운데 끝났지요. 이후 윤도현씨와 노영심씨의 콘서트, 한 방송국의 아침 프로그램, 그리고 연말에 지인들과 함께한 한 송년파티에서 연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웬만한 분들은 금방 ‘초짜’임을 느낄 수 있고, 애교로 들어줘야 할 수준이었지만 마냥 마다할 수 없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연주를 했습니다.

그럴 때에도 생각했습니다. 피아노든, 색소폰이든, 하모니카든, 어떤 악기든지 웬만큼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자고. 그 때뿐만이 아니라 중학교 3학년 때 짝이었던 조용필씨의 ‘위대한 탄생’ 공연을 볼 때 등 이후에도 여러 차례 느끼고 다짐하고는 했습니다. 무슨 악기든 하나라도 스스로 즐길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그럴 수 있게 노력해 보자고.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데 또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취미생활 등 여러모로 좋을 테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 10년이 가까워오도록. 지금도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핑계나 변명이 아니라 요즘은 공적인 자리를 비롯해 사적으로도 참석해야 할 일이 정말 많거든요.

내 영화에만 전념하면 되는 예전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을 때에 부지런히 연마했어야 했는데 그때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게 못내 후회스럽습니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고, 시간은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고, 후회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차제에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은 지금 하지 말아야 하고,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