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 | 작가
나는 나 자신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거의 매일 몸이 부서져라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나는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고 소위 유명인사가 되고 싶었다.
경향신문 DB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스물여덟 살 때부터다. 당시 나는 수억원에 달하는 보증빚을 진 채 성남시 빈민가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리고 경험했다.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 빈민의 삶을. 아니 부도덕한 지배계급이 만든 악한 사회 구조를.
자기계발서를 읽는 태도가 바뀐 것은 그 무렵부터다. 그 전의 나에게 있어서 자기계발서란 지친 마음의 충전기에 불과했다. 허나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니 자기계발서가 마치 어떤 구원처럼 느껴졌다.
다음 카페 <이지성의 폴레폴레> 화면 캡쳐 http:// cafe.daum.net/wfwijs
나는 목숨 걸고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자기계발이 사회를 바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라. 만일 서민들과 빈민들이 자기계발을 통해 깨끗한 성공을 거두고 그것을 아름답게 나눈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올해 나는 ‘다음(daum)’에 있는 ‘폴레폴레’ 카페 회원들과 ‘10년 안에 아시아 저개발 국가 및 아프리카에 학교, 병원 100개 짓기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빈민이었다가 자기계발을 통해 삶의 큰 변화를 일으킨 내 멘티들은 ‘우물 100개 파기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학교와 병원은 지어지고 있다. 우물도 두 개나 팠다. 그런데 사람들의 참여가 심히 저조하다. 지금 정도의 참여율로는 위 두 프로젝트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울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특강을 할 때마다 한국기아대책과 함께한다. 참석자 전원에게 아프리카 아동 후원 엽서를 쥐어주고, 1초에 8명, 24시간에 1만8000명의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영상을 나누고, 강의 내내 후원을 호소한다. 하지만 후원 신청 엽서는 잘해야 서너 장 들어온다. 모금함에도 고작 몇 천원이 들어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노숙자 후원 특강이라든가 쪽방촌 돕기 행사 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게 사회적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나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단지 표정 하나로 또는 말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후원을 이끌어내는 광경을. 그래서 나는 후회한다. 지난 세월 좀 더 치열하게 살지 못했음을. 내가 만일 열 배 더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열 배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 테고 열 배 많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과거의 안일함을 후회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을 뜨겁게 불태우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 지금 이 순간, 타오르자. 후회하지 않을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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