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Films on Musicians] 스팅(Sting)과 클래식

팝스타 스팅이 내한공연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내한을 알린 기사들의 헤드라인들을 보니, "팝스타 스팅, 클래식 거장들 음악에서 영감얻어", "스팅,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에서 얻는다", "스팅과 오케스트라...웅장한 팝의 세계" 같이 클래식 음악과의 연관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스팅은 '클래식을 평소 좋아하고, 클래식 거장들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받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공연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심포니시티> 공연 때문이기에 그나마 클래식 음악과의 연관성이 더욱 부각되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스팅이 그냥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정도로 이야기하기엔 아쉬운 감이 많다. 스팅이 그간 실제 클래식 음악계에 벌인(?) 일들이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싱어로서
, 작곡가로서기타리스트로서많은 재능을 지닌 스팅이지만, 그 중에서도 팬들이 그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요소는 '목소리'와 그 '탁월한 음색'이 아닐까 싶다. 이 매력요소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오랫 동안 그 빛을 발해오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그리고 전통적인 것 같지만 아주 현대적인 방식으로.       

첫 번째 소개하는 그의
 시도는, 1994년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The Chamber Orchestra of Europe)와의 작업이다. 어린이들에게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소개할 수 있는 최적의 작품,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 연주에 스팅은 내레이션을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프로코피에프 <피터와 늑대>, 스팅 내레이션


스팅은 목소리로만 등장하지만
, 내레이터 역할을 맡은 인형이 스팅과 참 많이 닮았다. (말하자면 아바타....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인형도 실물의 특징을 잘 잡아낸 듯...^^)  
'쉽게 다가가는 클래식', '어린이들을 위한 클래식' 하면 가장 대표적인 이 작품의 내레이션을 듣다 보면, 그의 목소리 자체도 멋있지만동화구연가, 혹은 성우 못지 않은 목소리의 연기력이 느껴진다.

두 번째 소개할 스팅의 클래식 작업은
, 2007년에 있었던 <The Journey &The Labyrinth> 음반이다. 류트 연주자 카라마조프(Edin Karamazov)와 함께, 16세기에 영국에서 유행했던 류트노래들(주로 존 다울랜드의 곡들)을 연주하여 음반+DVD로 묶었다음반에는 영국 런던 St. Luke 교회에서의 연주를 모았고, DVD에는 라이브 연주장면과 두 음악가의 협업과정,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대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의 토론이 담겨있다.     




유럽에서 다울랜드 류트음악의 대중적인 인기는 서양음악사 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스팅은 류트와 독창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이 음악이 왜 그 당시에 그렇게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받을만 한 지를 소리로 일깨워 준다류트가 옛 악기이기 때문에 현대의 기타류 악기들보다 음량이나 표현력에서 뒤떨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부드럽고도 섬세한 에딘 카라마조프의 반주는 나즈막히 그 존재를 드러내며 스팅의 목소리와 어우러진다.
스팅은 "나 스스로를 다른 이(다울랜드)의 작품, 다른 이의 창작 작업 속에 이입시키는 것이 나에게는 득이 되는, 그리고 매력적인, 발견의 여행(the journey)이자, 미궁(the labyrinth) 속으로의 여행이다"라고 음반에 적고 있다. 앨범의 제목에 등장하는 '미궁(labyrinth)'이라는 단어가 단어 자체로도 무언가 신비한 느낌을 주지만(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단어), 이 단어에 근거를 두고 등장하는 비주얼들 또한 참 아름답다.
스팅은 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라비린트식 정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넓지만 그 끝에 이르는 길을 알 수 없는 푸른 정원의 모습과 스팅+카라마조프의 연주가 매치되면서 알 수 없는 고독감과 슬픔의 아름다움이 전달된다.   

  

카라마조프가 연주하는 르네상스시대 악기 류트의 가운데에도 미궁이 새겨져 있다.

스팅의 음색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오직 류트 반주 위에 가수의 목소리가 각별하게 드러나는 이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0세기 팝스타가 부른 16세기 음악이라니 그 기획 의도가 무엇일까 싶지만(음반이 클래식 음악 레이블 Deutsche Gramophon에서 출시), 이 음반과 DVD 들어보면클래식과 팝 사이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면서 그저 시공간을 떠나 예술적인 퀄리티로만 승부하는 탁월한 음악가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울랜드 <Come Again> / 스팅과 카라마조프의 협연



다울랜드 <Clear and Cloudy>, 스팅 <Fields of Gold>


세 번째 소개할 작업은
, 스팅이 그의 부인 트루디 스틸러(Trudie Styler)와 함께 한 <Twin Spirits>.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여성분들이라면, 아마 "저렇게 멋진 목소리의 남자는 어떤 여자와 살까?" 혹은 "저 남자와 사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정도의 상상 한번 쯤 떠올려 보셨을 거라 본다.ㅋㅋ DVD에 바로 그 행복한 여인이 등장한다. 스팅은 연극배우인 부인 스틸러와 함께, 이 필름에서 슈만 커플의 편지를 낭송하며 약간의 연기를 덧붙인다.  


스팅은 로베르트 슈만의 화신으로
, 스틸러는 클라라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주고 받았던 러브레터의 주요 부분들이 이들에 의해 낭독된다. 이들(스팅 커플)의 낭독 사이 사이에무대 후면에 자리잡고 있는 음악가들이러브레터에서 표현되고 있는 이들(슈만과 클라라 커플)의 감정이 담긴 가곡들과 기악곡들을 연주한다.
슈만과 클라라의 편지를 낭독으로 듣는 것도 흥미롭지만, 사이사이에 슈만/클라라의 대표작들이 연주되어 이 커플의 강렬했던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스팅 커플의 낭독을 듣다 보면, 슈만-클라라 커플이 필름의 제목대로 'twin spirits (쌍둥이 영혼? 영혼의 동반자? 소울메이트?)'이라기 보다, 이 스팅 커플이 'twin spirits'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 만큼, 각자 슈만과 클라라로 빙의하여 두 예술가의 사랑을 표현해 준다



<Twin Spirits>의 트레일러


DVD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스팅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필름을 제작한 감독 존 캐어드(John Caird)가 스팅 부부의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이 감독이 슈만의 열렬한 팬이었고, 슈만 커플의 편지들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아름다운 문장들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그래서 이런 필름을 기획하게 되었고, 여기에 딱 제격이었던 스팅 부부를 참여시키게 되었다고 했다

슈만 커플의 사랑이야기 위주로 가다 보니, 낭만적인 사랑이 좀 격하게 드라마적으로 미화된 것이 아닌가 싶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이를 들면서 더욱 멋있게 늙어가는 두 예술가, 스팅 커플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이 있는 필름이다. 여기에 덧붙여진, 독일 츠비카우에 있는 슈만의 생가(현재는 슈만하우스라는 이름의 슈만 아카이브(연구소)로 보존)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슈만의 생애를 되짚어보게 해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 정도라면
, 그냥 '클래식 음악 쫌 좋아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현대의 클래식 음악 씬 안에 스팅이 꽤나 깊숙히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그가 클래식 음악가들과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예술적 협업과정에서 정말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싶다
대중음악/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는 의미있는 협업이, 시도를 원한다고 해서,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팅이 그만큼 내공이 있는 음악가이기에주변에 그와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클래식 음악가, 클래식에 관심있는 타 분야 예술가들도 많고, 다양한 기회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한 기자회견에서 스팅은 '음악가로는 고전에서는 바흐,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에프를 꼽으며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훔쳐오기도 한다'고 했단다. "훔쳐왔단" 표현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아마 스팅이 의미한 바는 '표절했다'는 의미라기 보다 '이들의 음악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다음 작업은 "모던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는데앞으로 또 다른 '클래식' 작업이 또한 없을지한편 기대가 된다.